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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새 혀를 가진 인간의 설장구~ 등록일 2023.06.02 13:17
글쓴이 박은숙 조회 29359

참새혀를 가진 인간의 설장구<습작>


<저작권 있는 글입니다.>
참새 혀를 가진 인간의 설장구
글 박 은 숙
 이야기를 하자면 참 서론이 길어질 것 같다. 나는 소설을 좋아하였으나 읽고 눈으로 보고 머리 속에 담는 일만 평생 해왔다. 편지도 별로 써보지 않았으며 글쓰기 귀찮아 컴퓨터 자판기를 두드리는 그런 수준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소설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내가 소설을 쓰고 싶다거나 쓸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막연하게 소설이 재미있고 남들이 써놓은 글이 마음에 들어 읽기를 좋아했을 뿐이다. 글짓기 시간에 몰래 삼류 소설을 읽다 선생님께 벌을 선 적도 있으며, 나의 어린시절은 만화보는 재미에 빠져 시간만 있으면 만화방에서 살았다. 일요일이면 인기있는 만화를 빌려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엄마 몰래 본다. 시골의 부엌은 요즘 부엌과는 거리가 멀다. 흙으로 만들어진 바닥에 검은 솥을 얹어놓은 연탄 아궁이였다. 아궁이가 있는 벽은 불에 그을려 까맣다.
부엌 아궁이 위에는 대나무로 만들어진 밥통이 매달려 있었다. 어머니는 천장에 길게 뻗어있는 나무에 못을 박아 철사를 길게 고리를 만들어 밥통을 걸어 놓았다. 대나무 밥통에는 보리쌀을 삶아 넣어 놓았는데 , 밥을 할 때마다 한 주먹씩 쌀과 섞어 밥을 했다. 대나무 밥통은 그네처럼 흔들리기도 하고 가만히 멈춰 있을 때도 있었다. 삼배를 작게 잘라 깨끗하게 빨아 항상 보리쌀을 덮어 놓는다. 내가 학교에 가거나 외출에서 돌아와 밥이 없을 때, 밥대신 먹었던 보리쌀은 최고의 음식이었다. 찬물에 삶은 보리쌀을 말아 된장이나 고추장에 풋고추를 찍어 먹으면 그맛이 일품이었다. 처음 삶아 김이 무럭무럭 날 때는 물기가 촉촉해 미끈미끈하다, 나중에 보면 푸석푸석하게 보리알이 따로 놀았다. 그러나 그 맛은 지금도 나의 혀를 자극한다.
마당을 지나 뒤안으로 돌아가면 부엌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낡아 삐걱거리는 문은 세세하게 보면, 원목으로 맞춰놓은 새가 떠있는 볼품없는 문이다. 문은 항상 옆으로 기울 듯 열려 있고 뒤로 자빠져 있다. 바닥은 흙으로 덮혀 있었으나 돌처럼 단단해 물이 스며들지 않는다. 작은 창문은 통풍이 잘 되었으며, 봄에는 수양 버들이 늘어져 창문 앞에 어른 거린다. 학독 위에 대나무를 얽어 만들어 놓은 살강이 있다. 그곳에는 놋그릇과 수저통 그리고 여러가지 양념 그릇이 놓여 있다. 옆에는 물이 들어있는 물독과 쌀이 들어있는 뒤지가 있고, 방쪽으로 연탄 아궁이 두개 가 나란이 있다. 아궁이 주위로 바닥보다 높고 넓직하게 내가 앉을만한 장소가 있다. 연탄이 매일 따뜻하게 불을 내품고 있어, 한 겨울에 밤이나 고구마를 구워 먹으면 맛이 일품이다. 시멘트를 발라 만들어진 바닥은 맨들맨들하고 깨끗하다. 나는 한 밤중에 몰래 만화책을 들고 연탄 아궁이 옆에 앉아 만화를 본다.
흰 눈이 펑펑 내리는 어느날이다. 마당에 눈이 소복하게 쌓여있고 모두 잠든 밤이다. 강아지도 잠이 들었는지 기척이 없고 나는 슬며시 내 방에서 나와 부엌으로 간다. 뻥 뚫린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오고 있다. 전깃불을 살짝 켜고 낮에 빌려 숨겨놓은 만화 책을 뒤지에서 꺼낸다. 재미에 빠져 정신없이 읽고 있는데 머리가 아프고 헛구역질이 난다. 연탄에서 이산화탄소가 스믈스믈 코속으로 스며 들어간 모양이다. 연탄 불 검사하러 부엌에 오신 어머니에게 들켜 혼줄이 난다. 눈 밭에 있던 장독에서 신건지를 꺼내 물을 타주며 걱정하던 눈빛과 화를 내던 눈빛이 서로 교차한다. 어머니의 손 바닥이 불을 품는다. 잽싸게 마당으로 도망쳐 눈 밭을 뛰어다닌다. 강아지 복순이도 덩달아 쫒아 다닌다. 눈이 쌓인 마당에는 복순이와 나의 발자욱이 화석처럼 선명하게 찍힌다. 만화 책들이 흰눈이 덮여있는 마당에 나뒹군다. 어머니의 고함소리가 어둠속을 헤맨다.
학교에서 돌아와 공부를 하는둥 마는둥하더니, 산책을 겸해 만화방으로 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나를 찾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멀리 들린다. 못들은 척 구석에서 이야기 속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만화방 문에 걸려있는 어제본 다음편이 연속극처럼 궁금해 견디지 못한다. 책을 보고 있으면 아편처럼 빨려 들어가는 나를 느낀다. 만화를 좋아하던 나는 상상력이 풍부해져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편다. 문이 열리고 삐쭉 내다보는 엄마의 성난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의자에 앉아 책으로 얼굴을 가린다. 결국 엄마에게 붙잡혀 집으로 돌아온다. 만화 보면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야단치는 어머니가 야속하다. 눈물을 찔끔거리며, 시간만 있으면 만화방을 제집 드나들 듯 하던 내가 웃읍다. 나는 상상속에 백설공주가 되어 슬픔으로 밤을 샌 적이 있다. 절대 만화 보지 않겠다며 손가락 걸던 맹세가 무용지물이 되던 세월이다. 오늘날 나의 창작의 밑걸음이 되었을 것이라 믿는 나는 그 시절이 항상 그립다. 어머니와 줄다리기 하던 정감이 흐르는 기억속의 한 장면이다.
영화는 재미있고 즐겁고 나의 아픈 마음을 치료해주는 의사와 같다. 영화라면 장르를 막론하고 즐겨 본다. 영화를 보기시작하면 누가 옆에 죽어 나가도 모를 정도로 몰입한다. 책 읽는 것이 귀찮아 삼국지를 비디오로 본다. 사십여편이었는데 며칠동안 밥도 굶은 채 미친듯이 탐닉한다. 하루종일 비디오를 보고 새벽 다섯시까지 보고나면 얼굴이 핼쓱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길을 가다 영화관에 색다른 영화가 상영되고 있으면, 무의식적으로 차에서 내려 영화관으로 들어간다. 십분이라도 보고 가는 나의 영화 중독은 아무도 말리지 못한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는 그런 모든 경험들이 글 쓰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간접 경험들이 인생 공부를 충분히 한 셈인 것을 안다. 그러나 노련한 글 한줄 나오지 않는 허접한 경험이라는 것을 느낀다. 기억과 노력들이 머리 속에 들어있어도, 역시 글 공부는 따로 해야하는 모양이라 생각하며 한숨 짓는다.
산다는 것이 괴롭고 힘들어 자살이라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누구에게 이용당한 것을 눈치채자 당황하고 힘들어 한다. 어떤 식으로 대응해야 할 것인지 방법이 생각나지 않을 때 나는 춤을 춘다. 어린 시절에는 훌륭한 교장 선생님이 되고 싶은 적이 있다. 거울을 보며 어머니의 축 늘어진 밤색 외투를 걸쳐 보고 환상에 젖기도 하였다. 무게를 잡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나의 미래를 상상한다. 실제로 나는 그 외투를 걸치고 학교에 간 적이 있다. 어린 시절은 꿈이 있어 행복하고 즐겁고 희망이 있어 기운이 돋고 삶이 싱그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삼십대에 서있는 지금 이 순간 허접한 인생이 된 것 같아 불행하고 자신감이 없어진다. 형편없는 삶을 살고 있다 생각하며 우울한 나날을 보낸다. 나이는 먹고 남자라도 있으면 시집이라도 갈 것을 ....그동안 사귀던 남자 하나 변변하게 만들어 놓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어른들은 얼른 시집이나 가라면서 야단 법석이다. 만약 시집을 가버린다면 그동안 닦아놓은 나의 춤은 몸 속에 꼭꼭 숨어 버릴 것이다. 그리고 어느날 살며시 끄집어 내어 주길 바라며, 마음 속에서 요동을 칠 것이다. 철저하게 숨어 의미없이 살아갈 생각이라면, 춤은 가을 낙엽 속에 묻어 버려야 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 말고 유에서 무를 만들자. 그리고 침묵의 산을 넘어 양지바른 곳에 놀이터를 만들어 몰래 놀아본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그림자들이 노는 곳, 그곳이 나의 춤을 살리는 진실이 될 것이다. 모래알처럼 씹을 수 없는 껄끄러움이 살아가는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나는 존재의 슬픔속에 시간을 버리지 않을 생각으로, 노련하게 모든것을 이겨나가는 중이다.
우연히 만난 한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키가 크고 얼굴이 약간 길고 옷을 잘 입었다. 모델처럼 쭉 뻗은 몸매가 돋보였다. 그사람은 나의 첫 인상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하얀 치아를 내보이며 가끔 의미없는 웃음을 웃는다. 웃는 얼굴이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럽고, 촬슨 브론슨을 닮은 매력 있는 얼굴이다. 내가 길을 걷고 있는데 옆으로 와서 계속 말을 걸던 남자다. 고목나무에 매미처럼 느껴질 정도로 키가 크고 멋이 있었다. 그런데 두고두고 이어지는 인연때문에 약간 당황하고 있는 중이다. 그남자와 차한잔을 마시고 헤어진 적이 있는데, 선을 보는 자리에서 인연인지 악연인지 또 만나게 되었다.
옆 집에 오랜세월 친 언니 처럼 지낸 경숙이라는 언니가 있다. 갑자기 나이도 먹을만큼 먹었으니 선을 한번 보면 어떤가 물었다. 장난삼아 킬킬거리며 선을 보자고 하였는데 설마 이 남자일줄 몰랐다. 우리는 명동의 작은 호텔 커피숍에서 세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다. 나는 평소보다 좀 야하게 꾸미고 소풍가는 아이처럼 좋은 기분으로 나갔다. 나의 머리카락은 워낙 갈색이라 햇빛을 받으면 노랑색이 날 정도로 윤이 났다. 가을이지만 약간 추운 날씨라, 짧은 검은색 치마에 감색 쉐타을 입고 긴 부추를 신었다. 머리를 풀어 긴머리를 손질하여 말아 올렸다. 다른 날보다 유난히 치장을 한 나의 모습이 좀 해학스럽다.
나는 신설동에서 버스를 타고 을지로 3가에서 내려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버스와 자동차가 아스팔트 위에 경주라도 하듯 달리고 있었다. 길가에는 가로수 대신 은행나무가 서 있었으며, 바람이 불때마다 은행잎과 은행이 떨어졌다. 실수로 나의 신발 밑에 깔려 터져, 비릿한 냄새가 코 속으로 스며든다.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고개를 들었다. 앞을 보니 키가 큰 남자가 몸을 흔들며 걸어가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바로 월요일의 그남자였다. 나는 모른척 얼굴을 수그린채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아리랑 호텔 커피숍 창문 있는 곳 테이블에 앉아 밖을 보고 있었다. 워낙 작은 호텔 커피숍이라 사람들의 얼굴이 가깝게 보인다. 오현주 라고 써있는 칠판을 들고 예쁜 아가씨가 내 옆을 지나간다. 나는 일어서서 카운터 쪽을 바라본다. 그남자가 내 테이블로 걸어오는 것이 보인다. 순간 몸이 작아지는 것을 느끼며 얼굴이 살짝 달아올라 당황하고 멋적어한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남자가 웃으며 아는척을 한다.
"어머! 이게 누구야 ! 저...., 누구 좀 만나러 왔는데요."
"저는 오현주 씨를 만나러 왔는데... 혹 아가씨가 오현주~ "
"어머나 저는 진정민 씨라는 분을 만나기로 하였는데요. "
'아니 어떻게 이런 우연한 일이 있습니까? 제가 진정민입니다. 핫하하하..."
그사람은 너털 웃음을 웃으며 상기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순간 얼굴이 빨개지고 기분이 이상해진다. 눈을 내리깔고 손을 만지작 거리다보니 당황하는 내모습이 어색하다. 우연이라 하기에 약간 웃읍기도 하지만 내심 불안이 엄습해온다. 어떤 예감이라고 할까 뭐 그런 종류다. 그사람은 진짜 인연이라며 내심 좋아하는 눈치다. 나는 당황하고 어이가 없어 기분이 무덤덤할 뿐이다. 분명 그 사람은 나의 호감형이 아니다. 키가 너무 커 부담스럽고 나이도 나보다 네살 많은 노총각이다. 며칠 전 커피숍에서 다른 전화 번호를 준 것이 마음에 걸린다. 나는 머리속으로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 무의식적으로 그사람이 싫어할 짓을 연출한다. 건성으로 뭇는 말에 대답하고 커피를 흘리며 입을 벌리고 히죽 웃는다. 춤을 미친듯이 추고 있는 춤쟁이며, 어줍잖하게 소설 공부를 하는 초년생 글쟁이라 덧붙힌다. 아무래도 현모양처감은 아니라고 말하며 속으로 어이없는 듯 웃는다.
이정도로 말하면 남자가 질겁하여 가버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남자는 오히려 결혼을 전제로 사귀어 보자며 관심을 갖는다. 나는 나이가 많지만 아직 결혼은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백마탄 왕자님이 나타나면 모를까? 오늘 선 보러 온 이유는 그냥 우연히 심심해서 나온 것이라는 느낌을 주려고 노력한다. 그사람은 내가 이야기 할 틈을 주지않고 계속 자신의 이야기에 열중한다. 그동안 수십번 선을 보았는데 마음에 드는 인연이 없었다며 혼자 넋두리한다. 나는 그 자리가 불편하여 빨리 그 곳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에 하품을 연신 한다. 시든 꽃 잎처럼 대화가 끊어지고 생기가 나지 않는다. 시선을 고정시키지 못해 애를 먹는다.
그사람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아량이 없어 보인다.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 서로에 대해 더 이야기하자며 먼저 일어나 카운터로 간다. 나는 살짝 웃으며 남자 친구와 약속이 있어 가봐야 겠노라 조심스럽게 말을 붙힌다. 남자는 슬며시 찡그린 표정을하며 다시 만나고 싶다며 아쉬운 표정을 한다. 갑자기 이런 분위기가 낮설고 혼란스러워진다. 역시 홀로 사는 것에 길들여져 있어서 남자와의 만남이 답답하고 숨이 막힌다. 이래서 어찌 남자나 만날 것이며 결혼이라는 것을 생각이나 해보겟는가? 지금까지의 나는 언제나 이런 식이다. 그래서 아직 좋은 배필을 만나지 못하고 나홀로 신세를 한탄만 하고 있는 것이다. 혼자 살아야 할 팔자는 아닌지 은근히 걱정이 된다. 키가 크고 멋진 그사람과의 만남은 너무 싱겁게 끝이 났다.
요즘 나는 부도직전의 회사에 다니고 있다. 실날같은 의리때문에 그만두지 못하고 일에 관여하며 애를 태우고 있다. 직원들이 회사를 살리려고 온갖 노력을 하고 있지만, 회사 주인인 사장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회사를 살리고 싶은 생각이 있는지조차 의심이 가는 행동이다. 직원들은 그동안 월급 받고 일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단원으로 공연을 만들어 회사도 먹여 살리며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회사는 모든 서류를 작성하여 관리 하여 주는 명목으로 공연비에서 얼마씩 챙겨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연이 많고 인원수가 많아지자 회사는 어느정도 상당한 부를 누리고 있었다 짐작된다. 그러나 회사는 언제나 어렵다며 힘들어 하는 모습으로 일관하였다. 회사는 순식간에 문을 닫기 일보 직전이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월급을 못 받지 못할 것 같다. 요즘 그 문제로 골 머리를 싸매고 있어 사실 결혼 문제로 고민할 여유가 없는 형편이다. 어쩌면 좋은 기회를 또 잃었는지 모른다. 지나고 보면 항상 후회와 연민으로 고민하는 것이, 나약한 인간의 참 모습이라 생각된다.
일이 좋아 평생 일만 하다 죽는다는 생각을 하며 살던터라, 남자에게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남자들과 일을 하고 있어도, 그저 동료나 친구 이상의 느낌이 오지 않았는데, 요즘 왜 이러는지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 일이 새끼처럼 꼬이고 돈 벌기 힘들어지자 나는 당황하고 일에 재미가 없어지고 있는 중이다. 일이라는 것이 원래 잘 풀리고 또 명예나 모든 것들이 마음과 뜻대로 잘 돼야 하는데....,요즘 같으면 살고 있다는 자체가 지옥문을 드나들고 있는 것처럼 죽을 맛이다. 알랑 드롱 같은 남자가 프로포즈 한다해도 관심을 갖지 못할 형편이다. 옆집 언니는 바보같이 그 남자를 놓쳤다며 혓바닥을 찬다. 아무래도 꽤 괜찮은 사람인 모양이다. 그 사람은 키가 너무 크고 얼굴이 길어 나의 호감을 놓쳤다. 이유야 어쨋든 나는 후회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잠시 미련을 접고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조건을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인간의 됨됨이나 성격 그런것보다 생김새나 재력 또 학력을 많이 따지는 것을 본다. 아무리 재물이 많고 여건이 훌륭해도 서로 잘 맞지 않으면 헤어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깊은 세월에 미운정 고운정이 들었어도, 어떤 문제로 고민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서로 안보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누구의 잘못이든 아니든지 서로 원망 할 필요는 없다. 스스로 파논 무덤에 빠진 형국이니 항상 자신의 탓이라 여기며 잊어야 할 것이다. 나는 그사람을 잃은 것에 별로 큰 비중을 두지 않았는데, 주위에서 난리를 치는 바람에 마음이 이상하다. 꼭 잘못을 하고 꾸지람을 듣고 있는 아이처럼 속상하고 이런 상황이 낮설다.
여자는 결혼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무섭다. 우리 세대 사람들은그런 것들을 깨기 쉽지 않다. 무조건 독신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정말 가슴이 찌릿하도록 감동시키는 사랑이 존재한다면 서슴없이 시집을 갈 생각이다. 아직 여자로써 초라함을 느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나를 좋아할 남자가 별로 없을 것 같은데 ....포기하고 살던 시절이 행복하다. 이제는 보는 사람마다 시집가라고 놀려 죽을 지경이다. 그런데 아직 때가 아닌 것 만은 사실이다. 나이가 많아 아무에게나 헐값에 시집을 갈 정도의 그런 삶은 분명 싫다. 나의 일을 사랑하고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살던터라, 이런 나를 이해할 사람이면 생각해볼 것이다. 지금 해결할 일들이 널부러져 있는 휴지처럼 고민 많은 머리속을 정리부터 해야한다.
회사에만 가면 정신이 산만하고 서로 싸우고 헐뜻는다. 조금이라도 손해보지 않을 방법을 모색하느라 이마에 내천자를 그린다. 서로 사나운 모습을 감추고 겉으로 젊잖은 척 한다. 기술적인 장사꾼들처럼 냉정하고 계산적이다. 정말 호감이 가지 않는 무서운 모습들이다. 그러나 동료로 인정하고 서로 상부상조하고 있는 악어와 악어새 같다. 오랜 세월 종사하다보니 미운정 고운정이 들어 서로 버리지 못하고 끌려가며 서로 견제한다. 좋은 일도 생기지만 한판 붙을 일도 많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가는데 일은 하나씩 결실을 맺고 또 갑작스런 사건도 불거진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조심스럽게 전쟁을 치루는 것처럼 모든 정보와 지혜를 짜낸다. 어떤 과오도 용납이 안되며 조금만 틈이 보여도 일은 망가져 손해를 본다. 참으로 노련한 경험과 섬세하고 세련된 결단이 필요한 직업이다.
나는 직업에서 피곤함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사람에게 시달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저녁이 되면 파김치가 되어 몸을 가누지 못할 지경이다. 신경이 예민하고 정서적으로 메말라있는 요즘 누가 시비를 걸면 붙잡고 늘어질 것 같은 심정이다. 하늘이 도움을 주는지 아직까지는 별 탈 없이 지내왔는데 일이 꼬이고 위태위태하다. 하루가 지루하고 미칠 지경인데, 풀리지 않는 일 때문에 숨이 넘어간다. 어찌생각하면 이래서 여자 얼굴이 상하고 또 늙어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나이 들어가는 것보다 피부가 상하고 피곤한 모습이 걱정이다. 사람은 매일 조금씩 늙어가는 것이 아니다. 신선하게 상태를 유지하다 어는날 갑자기 어떤 계기를 통해 한꺼번에 늙어버린다. 몹시 아파 고생을 하였거나, 어떤 쇼크로 심히 괴로움을 당해 정신적으로 피페해졌을 때다. 갑자기 늙어있는 자신을 거울로 볼 때 참 기분이 묘해짐을 느낀다. 나는 요즘 나이에 비해 늙어가고 있는 것을 안다. 그것이 사실 걱정이며 난감하다. 신경을 쓰고 있는만큼 어제의 내가 아닌 것이다.
공연을 한다는 것은 크고 작은 일과 함께 여러가지 잔손질이 많이 간다. 세밀하고 작은 부분까지 흠을 찾아 고르게 해야 반드시 호평을 받기 때문이다. 개성있는 춤이나 또는 공연물이 남다르게 특이하거나 새로운 맛을 내포해야 시선을 끌 수 있는데....누구나 그런 재주를 타고난 것은 아닌 모양이다. 같은 작품을 안무해 주었는데 왜 그렇게 색이 다른지 제 각각이다. 동작과 음악이 비슷해도 살짝 연출을 달리하면 다른 작품처럼 보인다. 의상을 다르게 입고 화장기법이나 또 소품과 조명을 살짝 비틀어도 작품이 색다르다. 이것은 군무가 아닌 솔로 작품일 때다. 오랜세월 작품을 많이 만들다보니 일종의 쉬운방법이 생긴 것이다. 그들은 나에게 와서 작품을 만들어 간다. 그것이 내가 매일 머리를 싸매고 하고있는 일중의 하나다. 내가 지금까지 사랑하던 직업인 것이다.
안무자란 음악만 들으면 항상 작품 구성이 오초내에 떠 올라야 한다. 밑 그림을 머리속에 그리고 작업에 들어가는 것이다. 무대에 설 사람을 보고 또 키가 크고 작은지, 뚱뚱한 모습이거나 아니면 얼굴의 모양새를 봐가면서 작품을 짠다. 그 사람에게 맞는 작품을 만들어 줘야 하기 때문이다. 완벽한 맞춤형 작품인 것이다. 손가락이 긴 사람과 짧고 굵은 사람의 동작이 같은 모습이라도 표현이 다르게 나온다. 사람마다 느낌과 색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나는 요즘 어떤 아이를 만났는데, 아이는 얼굴도 예쁘고 마음도 고와 보인다. 춤을 전혀 추지 않았다고 하는데 열심히 배워 공연을 하고 싶다고 한다. 어느세월에 배워 공연을 하겠는가 싶어 나는 아이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아이는 얼굴은 갸름하지만 도시적인 얼굴에 눈이 크고 시원스럽게 생겼다. 입도 도톰하고 키도 아담하고 무용하기에 적당하다. 살짝 통통한 것만 빼면 무대에서 알맞은 체형을 갖췄다. 잘 가르치면 꽤 쓸만한 공연을 하겠구나 싶다. 나는 이아이에게 설장구를 가르쳐 공연을 시킬 생각이다.
설장구~
생각하면 가슴 벅차 오르는 단어다. 내가 설장구를 배우며 인간으로써 자존심을 짓밟히고, 힘들고 어렵고 곤욕스럽게 익혔는지, 설장구가 어느정도 예술의 경지에 이를 때까지, 도를 닦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생각으로 일관하였다. 어려운 설장구를 배워 다른 사람에게 쉽게 전수한다는 것 자체가 무심하다 하겠다. 하지만 죽도록 고생하여 배웠으면 나름대로 소화를 시키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고상하고 우아한 척하며 혼자 보존하고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한사람이라도 더 가르쳐 여러사람들에게 알리고 맥을 이어줘야 대대손손 이어가지 않겠는가? 그러나 지금까지 공연할 작품을 만들고 안무 연출 하던 사람이, 갑자기 설장구만 가르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좀 어울리지 않는다. 안무를 하다보면 잘하는 사람은 동작을 금방 소화시켜 당장 무대에 설 정도로 프로급이다. 그래서 그런지 신인을 키워 공연을 한다는 것은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다. 시간이 오래걸려 지루하고 답답하다. 또 실력이 빨리 향상되지 않아 죽을 맛인 느낌 자체가 싫다. 빨리빨리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근성인지 모른다.
요즘 쓸만한 인재가 없어 큰 맘먹고 그 아이에게 전화를 건다. 아이는 내일 오후에 연구소로 온다 한다. 이 아이라도 잘 가르쳐 인재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동안 제자복이 없는 것인지 어느정도 가르쳐 놓으면 모두 떠나 아직 이렇다 할 공연을 하지 못하고 있다. 설장구에 미련이 없는 아이들만 가르친 것인지, 아니면 적당히 배워 다른 곳에 가서 써 먹으려 하는 사람들만 가르친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런 속내를 모르고 공연이라도 해줄까봐, 빠른 시일내에 가르치려고 죽을 힘을 다한 내가 원망스러울 정도다. 나는 믿는 도끼에 발등을 수번 찍힌다. 애교 많은 아이들에게 수없이 이용당했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한번 시작하면 물 불 가리지 않고 핵심을 가르친다. 그만한 능력이 있고 가르치는데는 이골이 나서, 무엇이 필요하고 상대방에게 효과가 있는지 금방 알아낸다. 배우는 사람이 빠른 시일내에 어느정도 공연 할만큼 만들어 놓는다. 다만 중간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손을 놓아 버려 문제다. 그래서 아직 쓸만한 제자를 건지지 못한 이유다. 어떤 아이는 얼굴은 예쁜데 말이 많다. 욕심이 많고 허세를 부리며 이기적이다. 남을 배려하는 모습이 눈에 씻고 봐도 보이지 않는다. 한마디로 싹수가 없다고 할까 뭐 그런 이유다. 어떤 아이는 키가 크고 제법 그럴싸한데, 너무 흐느적거려 파워가 없고 개성이 없어 보인다. 기가 약해 뛰며 치고 받는 동작이 벅차 호홉이 짧고 긴시간 공연하기 어렵다. 또 어떤 아이는 키가 너무 작아 열심히 잘하고 있으나, 멋이 없고 선이 굵고 모양이 나지 않으며 감정이 약하다. 가지가지 속을 썩이는 일들이 널려 있다. 참 속상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모든면에 인내와 절도와 그리고 인간의 내면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아이가 있으면 하고 바랜적이 있다. 나의 모든것을 가르치고 다듬어 좋은 인재로 만들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임자를 만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다행히 내일 온다는 눈이 큰 아이는 제법 모든 조건이 괜찮은 편이다. 그러나 인간 됨됨이와 깊이를 저울질 해고고 나중에 판단해야 옳을 것이다. 혹 성격은 좋은지 소질은 있는 것인지 만약 몸치면 모든 것이 끝난 일이다. 나의 호기심과 기대가 망쳐지지 않도록 오늘 밤 기도해야겠다. 서로 여건이 맞아 잘 가르치고 받아들여도, 시간이 지나면 관계가 부자연스럽고 이기적인 방향으로 가지말란 법도 없다. 인간은 나이에 상관없이 다스리기 어렵고, 깊이 숨어있는 생각을 알아낼 수 없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일도 잘 안되고 제자 키우기 어렵다. 나는 사는 것이 쉽지 않음을 느끼며 하루하루 살얼음처럼 살고있다.
아침이다. 아침이 오고있다. 해가 떠오르더니 컴컴하던 세상이 환하게 웃고 있는듯 마음이 상쾌해진다. 창문을 열고보니 찬 바람이 쌩쌩불어 얼굴이 따갑다. 나는 세수를 하고 머리를 깔끔하게 빗어 뒤로 묶었다. 머리카락이 빠져버린 곳마다 휑하게 뚫어진 고속도로처럼 흰살이 보인다. 쓸쓸해진 마음을 호주머니에 넣고 집을 나섰다. 늦가을이지만 완연하게 겨울처럼 바람이 매섭다. 감색 쉐타를 걸치고 두꺼운 청바지를 입었다. 검은색 가방속에 언제나처럼 장구채를 넣은 긴 주머니가 들어있다. 밖으로 삐죽하게 나와 있어 불편할 때도 있다. 그것이 가방속에서 삐죽 내다보고 있는 모습이, 싸움하러 가는 병사의 총처럼 든든하고 안심된다. 괜스레 믿음직스럽고 나의 분신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연구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습한 냄새와 비릿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지하실이라 그런지 답답하고 공기가 통하지 않아 어딘지 모르게 퀘퀘한 냄새가 박혀있다. 오이처럼 길쭉한 모습을 한 공간인 연구소가 장막속에 숨어있다. 불을 켜지 않으면 암흑처럼 깜깜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들어가는 입구와 안으로 들어가면 밖으로 나가는 환풍기가 달린 비상구가 있다. 햇빛은 들어오지 않으나 문을 열어 놓으면 맛바람이 들어와 공기가 들어오는 유일한 통로다. 그러나 안쪽은 넓고 길쭉하여 쓸모가 있는 공간이다. 시끄럽게 장구와 북을 두드려도 아직 아무도 진정서 들고 찾아오지 않았다. 사실 불안해서 연습하기 힘든 것이 도회지의 실상이다. 건물이나 집이 성냥갑처럼 붙어있고 울림 현상으로 해서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이다. 매일 다행이다 라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낸다.
나는 습관처럼 주위를 둘러보고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는 버릇이 생긴다. 왜냐하면 지난번 있던 연구소에서 쫒겨난 기억 때문이다. 그들은 시끄럽다며 나를 쫒아내려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고 내용증명까지 보냈다. 옆 건물 사람들이 손해배상을 내라는 것이다. 나는 장구통과 북통을 모두 스펀지와 헝겊으로 동여맸다. 퍽퍽거리는 소리를 한심스럽게 들으며 연습 한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이곳은 넓고 길어 참 쓸만한 공간이란 생각이 든다. 소리가 밖으로 새지 않고 안에서 맴돌다 가라앉는 것이다. 문을 열어놓고 약간 소리를 밖으로 빼주면 울림 현상도 사라지고 괜찮다. 오랜만에 이만한 연구소 구할 수 있어 다행이다. 그동안 애쓰고 고생하며 참고 노력한 덕분이다. 그러나 인내속에 헛점이 있어 그동안 고생하던 제자를 잃었다. 그들은 순간 참지 못하고 나의 보금자리를 떠난 것이다. 미련없이 떠나버린 사람을 다시 붙잡고 하소연 하고 싶지 않다. 왜냐면 다시 시작하는 것이 더 자연스런 일이기 때문이다.
참새 혀를 가진 인간의 설장구....2
글 박 은 숙
사람이 때를 기다릴 줄 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 자신을 안다는 것과 모르면서 날뛰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 나는 스스로 아직 준비되지 못한자의 변명은 하고 싶지 않다. 사람이 하는 일은 아무리 노력해도 일백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다보면 조금씩 부족한 면이 보여 실망을 하고, 자만심으로 자신을 망치는 일도 있다. 내가 아직 확실한 답을 얻지 못한 것은, 너무 손바닥 보듯 훤히 보여 갈등을 느끼기 때문이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면 이것 저것 해보겠는데, 아무래도 스스로 즐기기 시작할 때 일은 시작 될 것이다. 나는 고집이 세고 독단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어느 누구 때문에 나의 존재를 쉽게 노출 시키지 않을 것이며, 보여주기위해 대충 넘어가지 않을 생각이다. 신념이 뚜렷하고 자존심이 강해 여자로써 좀 다스리기 쉬운 상대는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이니 생긴대로 살아야지 않겠는가? 여자가 고집이 세 어디다 써 먹느냐며 부모님께 야단 맞을 때가 그립다.
설장구가 쉽게 배우기 힘들어 고난을 당할 때가 있었다. 고난을 이기고 끝까지 밀고 나가게 된 것도 아마 고집불통같은 성격 때문이다. 좋은 쪽으로 고집을 부리면 좋은 일이 생긴다. 그러나 옹고집 때문에 난감하고 안타까운 문제가 만들어진다. 생각과 행동 때문에 태동하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확실한 명분이 있다면, 나는 오늘 당장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다. 부와 명예와 출세도 자존심을 잃어 가면서까지 지킬 필요는 없다. 세상에 할일이 많은데 하필 그런 것 때문에 눈물 흘릴 필요가 있는가 말이다. 그만큼 어렵고 힘들게 이루어놓은 것을, 어떤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얻어 버린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 종종 있다. 요즘 세상은 돈과 권세와 아첨이 들끓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나는 허수아비처럼 생명이 없는 존재다. 헌 옺을 입고 웃음도 잃고 먹지도 못한 채 수년동안 들판에 서 있었다. 비 바람에 시달리던 늙고 병든 허수아비는 주인에 의해 들판에 버려졌다.
주인이 허수아비를 밟고 지나간다. 황금빛 들판에 싱그런 아침이 찾아온다. 허수아비의 마음은 허허롭기만 하다. 어린아이가 지나가다 지쳐 허덕이는 허수아비를 본다. 아이는 허수아비를 다시 세워 예쁜 옷을 갈아 입힌다. 얼굴도 새로 만들고 머리도 매만졌다. 허수아비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들판에 서있는 허수아비는 의젓하고 씩씩해 보인다. 아이는 가끔 찾아와 웃으며 노래를 불러준다. 허수아비의 외로움은 사라지고 희망이 생겼다. 허수아비는 매일 사람처럼 생명을 넣어달라며 기도한다.
예쁜 여자 아이가 연구소 문을 열고 들어온다. 혼자 올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친구를 데리고 왔다.
두아이가 상당한 미모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각자 개성이 있고 또 귀염성을 타고 났다. 속으로 들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어쩌면 저들을 통해 나의 분신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보인다. 나이가 약 25세 정도로 영리한 눈 빛을 하고 있다. 한사람은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였고, 한 사람은 일찍 사회생활을 하며 독학으로 공부를 하고 있다 한다. 일단 여건이 좋다. 나이가 어려 때가 묻지 않았다. 기억력이 좋아 빨리 터득할 것 같다. 그러나 깊은 맛은 쉽게 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인생의 많은 경험과 삶의 희노애락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경험을 얻는 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일부러 이것저것 해보고 시간을 낭비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충분히 심사숙고하여 결정해야 한다. 나는 사람을 일부러 잡지 않는다.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며 본인이 직접 선택하게 만든다. 너무 자세한 설명 때문에 사람들이 호감을 갖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좋은점과 매력있는 부분만 알려주면 나중에 후회하고 원망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말과 행동이 바보같은 짓인줄 알면서 상대방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왜 그런 약점과 단점을 알려 주면서 손해 볼 짓을 하는 것인가 하고 묻는 제자가 있었다. 손해 보거나 당장 어렵고 힘들어도 원칙을 무시하며 살고 싶지 않다. 기본적인 원칙을 알려주고 상대방이 선택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최상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이것이 아닌데 후회하며 원망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 충분히 검토하고 아~ 진정 이것이 나의 길이구나 하고 느끼는 사람에게 설장구를 전수 할 것이다. 결과 나는 많은 제자를 잃었다. 그러나 후회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좋아하고 사랑하며 즐길 줄 아는 사람이면, 한명이라도 좋다는 생각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설장구에 대한 장점과 단점 그리고 어떤 의미의 문제가 있는지 모두 다 말해 줄 것이다. 선택은 그들에게 달려 있다. 억지로 내가 그들의 눈과 귀를 살짝 가리고 당분간 가르쳐도, 시간이 흐르다보면 알아차리고 선생을 원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스스로 알고 시작하면, 체념하면서 파악하고 노력하고 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 것이다. 정직하게 모든 것을 밝히고 또 단점은 고쳐 나가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될 것을 미리 말해두는 것이다. 나의 인생이 소중한 만큼 남의 인생도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주어야 한다. 남의 삶을 나의 욕심 속으로 끌어 드릴 수 없다. 그 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면서 서로 도움을 주는 관계가 더 없이 좋은 관계다.
인생을 살다보니 어떤 결과를 위해 노력한다는 자체가 한심스럽고, 의미없는 일이라는 것을 느끼고 자책을 한적이 있다. 하던 일이 열매를 맺으면 좋을 것이지만 유명무실하게 끝나버린 일도 있다. 그럴 때마다 축 처진 어깨로 한숨쉬며 살 수 없는 것이 바로 삶인 것이다. 나는 갑자기 분하고 원통한 일을 당했을 때, 간단한 일은 삼십분정도 화를 내며 미친 듯이 욕하고 난리 법석을 떤다. 그리고 삽십분이 지나면 모든 것을 잊어 버리고 기억속에서 영원히 지워 버리는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고 상당히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눈만 뜨면 수시로 생각나서 기절할 만큼 분통이 터진 일도 겪었다. 그 때는 한달 동안 아니면 두달 동안 이를 갈고 속을 끓이다 점점 잊혀버린 일도 있다.
나는 요즘 정말 용서할 수 없는 일을 당한 일이 있다. 수년 동안 완전히 이용당했다는 표현이 옳다. 많은 시간이 흐른뒤에 겨우 알게된 용의주도한 사람 다루는 기술 앞에, 탄복을 하며 그사람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깊이 생각해본 결과 좋은 현상은 아니다는 결론이다. 건전한 사고방식과 깨끗함이 존재해야 할 고귀한 세계에, 이기심으로 가득찬 개인주의가 꽃을 피우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과 파멸을 주고 스스로 몰락해가는 과정을 만든 것이다. 이 사건은 어쩌면 한달동안 화를 내서 해결 될 일이 아니다. 평생동안 용서할 수 없는 일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한숨과 구역질이 난다. 세월이 흘러 마음이 열리면 담담하게 이야기할 기회가 생길 것이다.
지금은 복잡한 마음을 다스리기 어렵다. 나는 부처님도 아니고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사람들의 실수를 이해하며 잘못을 다독여준다는 것 또한 쉬운일이 아니다. 그 정도의 아량을 베풀며 살 만한 나이도 아니고, 살아온 세월보다 앞으로 살아갈 시간이 더 많다. 닥치는대로 일을 처리하고 메꾸고 또 그때그때 땜질하며 살아온 세월이다. 미래를 위해 꿈을 키우고 또 설계하고 이루길 바라며 노력하는 자세는 누구나 원하는 것이지만, 나는 아직까지 못해본 일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즉흥적으로 살아온 세월인데 이제부터라도 계획을 세워 살아볼 생각이다.
아이가 인사를 한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동안 별일 없으시죠. 제친구 영아입니다. 조영아...."
아이가 웃무며 꾸벅 머리를 숙인다. 환하게 웃는 얼굴이 곱고 싱그럽다. 갑자기 가슴이 콩당콩당 뛰기 시작한다. 예쁘거나 아름다운 사람을 보면, 보기좋고 마음 설레이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사람으로써 당연한 사실이다. 아이들은 키가 162 센티 정도 보이며 몸무게는 아마 47정도 나갈 것 같다. 약간 통통해보여 아쉽지만 선반을 하다보면 살이 빠질 가능성이 있다.
처음부터 선반 설장구를 할 수 없으니, 앉아 연주하는 앉은반 설장구 가락을 익혀야 할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은근과 끈기가 없어 어렵고 힘들면 하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 과연 신인 아가씨들이 어느정도까지 공부해 나갈지 모른다. 지금까지 배우던 사람들이 가락 외우는 것만으로 머리에서 쥐가 나려 한다며 혀를 내두른다. 좀 하다보면 이핑게 저핑게 읖조리며 연구소 근처에도 오지 않는다. 나는 속으로 속상하고 섭섭하고 마음 한쪽이 무너지는 것을 느낀다. 그렇다고 재미있게 하기위해 변형 시킬 수도 없고 참 난감한 일이다. 그저 있는 그대로 물려 주어야 하는 문제 때문에 상당히 곤혹스럽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일중에서 제일 골치아픈 문제가 설장구 가르치는 일인 것 같다. 무용은 어느정도 몸치만 아니면 처음 하는 사람도 동작정도는 흉내를 낸다. 시간이 흐르다보면 본인 자신도 거울에서 보여지는 모습을 스스로 구경하며, 음악이 흐르면 솟아오르는 감정을 몸의 움직임으로 부드럽고 유연하게 만들기도 하고, 또는 거칠고 힘있게 해보기도 한다. 선생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여러가지 형태의 모습들을 머리속에 그려가며 연습해 보는 것이다. 그런데 설장구는 확실하게 가르쳐주지 않으면 도저히 가락도 외우기 힘들어 보인다. 수없이 반복하고 또 반복해야 겨우 순서 정도 외우는데....
그나마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머리가 좋은 사람도 타악에 소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상당히 차이가 있다. 머리만 좋다해서 잘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외우는데 소질이 없으면 답답한 터널을 지나는 것처럼 마음이 무겁고 가뿐하지 않은 경험을 하게 된다. 가락속에 스며있는 음악적인 요소를 기쁨으로 승화시키기까지 오래 걸려, 스스로 잘하고 있는 것인지 분간을 못한다는 것이 흠이다. 듣기 좋고 정확하고 음악성이 있고 예술성까지 끌어 올리려면....본인 자신도 어느정도까지 해보고야 겨우 알게 된다는 점에 진저리가 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감정이 조금만 있어도 이런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된다.
한장단 한장단 외우고 다듬어져가는 쾌락은 다른 어느것에 비교할 정도가 아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튕겨오르 듯 솟아오르는 기쁨 또한 스릴이 있다. 처음에는 가락 외우느라 이런 느낌을 얻지 못한다. 서서히 가락이 익어 갈수록 리듬이 생기며 파도처럼 리듬의 변화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점점 빠르고 느림의 촉감이 손끝과 귀에 익어 갈 즈음 듣는 사람들은 꽤나 잘하는 줄 안다. 그러나 본인은 이미 귀에 익고 손에 익어 지금까지의 과정이나 실력이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더 잘해볼 요량으로 더욱 맹진 하는 것이다. 해도 해도 마음에 차지 않아 연습벌레가 되기 시작하고, 스스로 도취되어 하면 할 수록 확실하게 자신감이 생기는데, 또 모자라는 부분이 훤히 느껴지기 시작하고 보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그것은 아니다" 라는 비판을 하기 어려운데 나중에는 확신이 서면서 분명 하게 말을 해 줄 자신감이 생긴다. 그러나 너무 자신감이 넘쳐 자만이 되고 또한 원형의 테두리를 벗어나게 되기도 한다. 창작을 한다면서 다른 부분도 생각하고 점점 하던 것에서 원형을 조금씩 변화시키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결국 조금씩 변화를 주며 자신만의 틀을 만들어 가게 된다.
메주 만들 듯 가락을 다듬고 또 만들고 요리저리 두들겨패서 도자기 굽듯 구워낸다. 그러다보면 어떤 가락은 들어줄만하고, 또 어떤 가락은 설 익어 아직 모자란다. 모자란 것은 검은 솥에 넣어 콩을 삼듯 불을 지펴 삶아내, 절구통에 넣어 잘게 부셔 다시 알갱이를 뭉쳐 예쁘고 진정한 메주로 만들 듯 시도 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좋은 온도에 띄어 알맞게 곰팽이가 피고 뜨면, 큰 독에 넣어 물을 붓고 숯을 넣고 적당한 소금과 햇빛을 잘 쪼여, 때가 돼 잘 조화가 되면 불에 팔팔 끓여 식혀 독에 부어놓고, 시간이 흐르다 보면 맛있는 간장이 된다. 간장 또한 오랜 세월과 적당한 온도와 바람과 공기와 햇빛속에 잘 놓아두면 기가 막히게 맛이 점점 익어간다.
간장을 빼고 난 콩을 잘 뭉개 독에 넣어 놓고, 조금씩 꺼내 된장 찌개를 끓이면 맛이 일품이다. 된장 또한 간장을 너무 찐하게 빼버리면 약간 싱겁고 맛이 어딘가 모르게 부족하다. 그러므로 적당한 조화가 필요한 것이다. 설장구 또한 이런 이치를 벗어 날 수 없으니 과연 심도있는 설장구는 조심스럽게 달래고 얼르고 아기 달래듯 하여야 한다. 도를 닦듯 해야하며 서두르지 말고 양파를 벗기듯 천천히 유유히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하다 버리면 아니감만 못한 것이니 한번 시작하면 끝을 향해 가야 할 것이다. 이런 맛을 보지 못하고 그만 두면 똥누고 밑도 닦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싶다. 글을 쓰는 사람 또한 과연 이런 과정을 다 겪어 보고 난 후의 감상적인 넌센스는 아닌지 생각하겠지만....얼추 비슷한 경험은 했다 여겨진다. 이런 모든 과정은 끝이 없어, 아직도 진행형이라 보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 반복해보는 것이 중요하지만 끈기 또한 필요한 것인데, 요즘 아이들은 견디지 못하고 포기하려고 해서 문제가 많다. 지금까지 이런 과정을 겪다 인재를 다 놓치고, 오늘도 오지않는 아이들 기다리다 목이 늘어졌다. 지금 눈 망을을 굴리며 호기심으로 앉아 있는 저 아이들에게, 싫증나지 않게 가르칠 수 있을지 생각중이다. 그저 연습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은데 걱정이다.
머리가 더부룩하게 키가 약간 큰 아이의 이름이 수호인데 무용과 풍물을 전공하였다. 나이는 이십오세다. 그리고 또 한 아이는 이제 여자 중학교 3학년이다. 무용학원을 하고 있는 제자가 있고 또 나이많은 아주머니가 두명 있는데 참 열심히 노력한다. 많이 발전하고 있어 보기 좋으나 역시 한계가 있다. 나는 이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실력있는 인재로 키우고 싶은데 잘 될지 모르겠다. 역시 설장구는 무용을 하거나 아니면 풍물을 하였거나 사물놀이와 또 다른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은 배우는 것은 빠르다. 그러나 쿠세가 있어 단점을고치기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깨끗하고 깔끔한 맛이 나지 않은 것이 문제점이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않은 생 초보를 선택하여 그림을 그리려 하고 있다. 어쩌면 또 다른 불편과 어색한 면이 있어 오래 걸리겠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 가는데 지름길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얘들아 오늘은 설장구를 시작하면서 필요한 것과 또 마음 가짐과 자세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나는 아이들의 눈망울을 한사람 한사람 들여다보면서 말을 시작한다. 지하여서 그런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그다지 춥지 않아 30평 공간이지만 난로 하나 피웠는데 훈훈한 기운이 볼을 스친다. 차 한잔을 마시고 나니 이미 얼었던 몸은 녹아 흐물흐물하다.
"장구통 다 준비해왔니?"
나는 큰 소리로 묻는다.
"녜 "
아이들은 촉새처럼 대답하면서 싱글벙글한다. 지금은 좋아하고 웃지만 언제까지 웃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가락 들어가면 너히들은 얼굴이 죽을 상이 될 것인데....나는 속으로 웃으며 말을 아낀다.

이 글은 소설 설장구를 쓰기위해 습작으로 끄적거린 것인데 ....버리기 아까워 남겨둔 것입니다. 진짜 소설 설장구는 다른 작품으로 쓰고 있고요. 읽다 보면.... 얻을 것이 있을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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