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숙 설장구
설장구 연구소를 운영하다보니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일들이 많다.
우선 장소를 선택하는 것이 문제인데....
장구 ~
먼저 시끄럽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 때문에...
장소 얻기 쉽지 않다.
연구소를 구하러 다니는동안 수없이 돌아다녔고, 이층 삼층 오층까지 올라가보고 온갖 별짓을 다했다.
운동화 신고 간단한 옷을 입고 동대문에서 시작해 신당동을 돌아 약수동 왕십리를 지나, 청계천 일대 그리고 재기동, 청량리에서 고대앞을 지나 미아리 혜화동 다시 동대문 그리고 신설동으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종로에서 광화문을 둘러보고 서대문 일대 아현동을 지나 마포까지 가보았다.
아침에 출발해서 하루종일 돌아다녔더니 발목이 아프고 발갛게 부어 걸음도 제대로 떼지 못할 정도가 되어 집에 돌아오길 오늘이 며칠인지....
보증금이 너무 비싸고 월세도 만만치 않다.
서민들은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지경인 것이다.
나도 몆년 전에는 중산층 정도는 된다 여기고 있었는데...
요즘~ 아예 나락으로 떨어진 느낌이 들 정도로 살기 힘들다.
이럴 때 돈많은 사람들이 부럽다는 것을 새삼 느껴본다.
물질만능주의가 만들어 놓은 덫이다.
그동안 그런 것에 신경쓰지 않고 살았던 지난날들이 혹 잘 못 살아온 모습은 아닌지 의심할 정도였다.
우선 복덕방에서 그런 냄새를 느끼게 한다.
사람을 괄세하는 듯한 표정과 무시하는 듯한 슬슬 번지는 웃음을 머금고
그돈으로는 변두리나 가보셔야죠~
억이 넘는 아파트나 비싼 땅이나 관심을 갖는 듯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작은돈도 모으면 큰 돈인데....
부동산이 전부 그렇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좀 싼 곳 없어요.
하고 묻는 나를 흟어보는 눈초리가 꼭 먹이를 낚아채려 노려보는 승냥이처럼 위아래를 비겁하게 훓는다. 그럴 줄 알았으면 의상을 쫙 빼입고 올 것을 ....허름한 작업복 입고 싼 물건 찾아 다니는 꼴이라니...허헛헛...
무용연구소만 할 때는 아무곳에든지 목이 좋고 널직하면 쓸만하던데...
설장구를 하려니 우선 건물주인에게 설장구 할 것이라고 해도 되느냐며 물어봐야 하는 애환이 생겼다.
장구소리가 삼십리는 갑니다.
해도 괜찮겠습니까?
십중팔구...아이고 ~ 그렇게 시끄러워 어떻게 해요. 옆사람들 피해주고 안됩니다.
딱지 맞고 나와버린 집이 몆군데나 되는지~
설장구가 뭐예요?
하고 묻는 복덩방 아저씨에게 하루종일 설명하고, 건물주인에게 설명하고 겨우 좀 괜찮은 곳이구나 하고 알아보면 상업지역이 아니어서 안된단다.
집은 깨끗하고 괜찮은데 근접한 거리에 사무실이 있어 안되고, 또 가정집이 있어 안되며 또 장소가 괜찮은데 윗층에 주인이 살아서 간섭이 심할 것만 같은데... 그곳은 유일하게 내가 싫다.
모든 조건이 마음에 든다 싶어 들어가보니 장소가 너무 협소하고 좁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도저히 여유있는 자금과 월세와 모든것을 충족시킬 만한 곳을 구할 수가 없다.
골목으로 들어가니 쓸만한 곳이 있지만....
아직 이름석자 많이 알려져있지 않는 존재를 누가 골목까지 찾아 줄 것인가.
억울하면 출세하라 하였는데...
유명세를 타지 못한 사람은 우선 목이 좋아야 그나마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찾아주지 않겠는가 싶다.
너무 쉬운 산수같은 계산으로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지금 있는 연구소는 삼년을 있었는데 한번도 마음놓고 수업을 한적이 없다.
그나마 대로변에 번듯하게 있어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얼른 눈에 띄는 그런 곳 이었다.
주변에 학교를 끼고 있고 또 주위에 골목과 도로변이라 좀 시끄럽게 해도 누가 뭐라 난리칠 것 같지 않은 그런 괜찮을 법한 곳이었다.
적어도 계약 할 때만 해도 좋은 생각만 하였다.
삼층과 사층을 같이 사용하였는데...삼층에서는 무용과 설장구를 하고 사층에는 꽹가리나 무대의상을 가져다 놓았다.
처음에는 바로 옆집이 가정 집인줄 모르고 이사를 하였는데...
첫날 장구를 치기 시작하자 날벼락이 떨어졌다.
쉰목소리의 중년 아저씨가 욕을 걸러대며 전화를 하셨다.
웬놈의 장구소리냐며 조용히 안하면 당장 동네에서 쫒아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너무 놀라 수업도 못하고 다음날 조리장사 달라돈을 내서라도 방음을 해야했다.
생각지 못한 돈이 들어가서 아무래도 그때부터 여러가지 경제적인 제약이 따르기 시작하였다.
며칠 뒤~괜찮겠지 스스로 다짐하며,
수업을 다시 시작하려 하였더니 ....
때르릉~
이런 # 같은~
우리 아들 대학 떨어지면 네가 책임 질거야~ 엉
올해 재수하는데...
다짜고짜 악을 쓴다.
아이고 하필이면....이런곳을 들어왔단 말인가/
방음을 두번이나 하였는데도 역시 소리는 ...장구소리는 날카롭게 공간을 파고 들어 귀를 어지럽힌다. 옆 건물과 벽이 붙어 있어 옆에서 연주하고 있는 것처럼 시끄러워 미치겠다는 것이다.
스트레스 받아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생겼다는데... 할말을 잊었다.
화나고 짜증나면 소음이요. 기분 좋으면 흥을 돋우는 물건이구나....
이것이 장구의 본 모습이란 말인가?
참담한 심정을 어디 하소연 하겠는가.
나는 미치도록 지금 처해있는 자신의 모습이 싫고 매일 우울한 늪에 빠져 들었다.
이런 모습의 형태는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선생이나 예술인에 대한 태도가 아니고, 완전히 광대나 천민에게 하듯 그런 냉냉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요즘 세상에
이런일이 일어 날 수가 있는 것인가.
물론 서로 안면도 없고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단지 장구소리 귀에 거슬린다 며 함부로 대할 수가 있는 것인가?
만약 내가 바이얼린이나 피아노 혹은 서양악기라든지 다른 음악을 하였다면 설마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황당하였다.
이건 사람을 떠나 단지 소리에 민감한 알레르기같은 태도였다.
그 분은 나이가 오십대 정도 되신 분이었다.
나를 쫒아내려 동네방네 진정서를 받으려 다니고 구청에 알아보고 상당한 노력을 하였으나, 장구소리 외에 어떤 것도 나를 그 장소에서 쫒아 낼 구실은 없었던 모양인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듯 하였다.
그러나 하루에 한번 내지 두번 전화와서 시끄럽다 말을 하면 참 행동하기 어려운 고난과 역경의 시절이었다.
만약 그분들이 조금만 즐기고 좋아하였다면...
아마 이 지경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운이 없었던 것이다.
시끄럽고 요란한 음악
흥이 있는 것같지만 계속 들으면 짜증이 날것 같은 소리의 주인공 장구...설장구
그러나 소리를 섬세하게 들어보면 어딘지 모르게 정이 풍부하고 감수성이 예민해지고
또 마음이 풍성해지고 속앓이가 풀어지는 시원함이 깃들어있다.
가락을 몰라도 뭔지 모르게 어깨가 들썩거리는 흥과 고독한 인성표출도 포함된다.
한도 서려있고 낭만도 깃들었고 서러움도 잠재해 있다.
그런데 슬픔은 소화가 안되는 것인가
기막힌 슬픔은 한을 통털어 서러움과도 약간 차이가 있다는 생각을 갖는 계기가 있었다.
어느날~
저녁때쯤이었다.
석양이 뉘였뉘였 빌딩숲을 가로질러 하늘 끝에 살짝 걸쳐있을 때
우리는 신이나서 장구통을 메고 연풍대를 돌며 혼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런데
누가 연구소 문을 누가 발로 걷어차고 난리법석이 일어났다.
그날 따라 북을 치다 설장구를 네명이서 연주하고 있을 때였다.
사연인즉
마누라가 죽어 마음이 슬프다못해 죽고 싶은데...
이놈의 장구소리 때문에 짜증나 환장해버리겠다는 말을 늘어놓으며..
술을 마셨는지 술냄새를 펄펄 풍기며 나를 노려 보았다.
차라리 육짜백이라도 한번 하던지 판소리라도 한번 할 것이지
맨날 무슨놈의 장구만 치고 그러냐고 하며...
장구로는 이 슬픈 눈물을 닦아 줄수 없는 것이냐고 물었다.
얼마나 미안하고 미안한지...
갑자기 생각해보니
기막힌 노릇이었다.
그저 우리는 순서대로 장구치고 가락 울리고 한배 맞추고...
음악성이 어떻고 장단이 어떻고 고저가 어떻다는둥 하며...
어깨춤을 추고 흥을 돋구고 또 즐거움을 만들기위해 온몸을 바치며
신나게 뛰고 돌며 스피드를 빠르게 하고 후드득 가락으로 몰아치는 기법이 어떻고...등등
다스림으로 파도를 만들기위해 혼혈을 쏟을 줄만 알았다.
그런데 아무리 연구해봐도 슬픈마음을 풀어줄 장구 음악은 생각해보지 못한 수준이었다.
굿거리를 느리게 하여도 음악성과 애절함과는 상당히 다르고~
동살풀이도 그렇고 양산도는 정반대의 이미지며
자진모리 역시 춤은 덩실거리며 나올지언정
슬픔의 애끓는 사연은 풀어주지 못하게 생겻다.
우리는 아저씨를 달래고 얼러서
의상은 입지 않았으나 그런대로 멋지게 공연을 보여주었다.
그분은 나중에 덤덤한 표정으로 나가면서
이열치열 이라고
아무리 흥을 내려 해도 기분이 별로라며 무덤덤하게 연구실을 나갔다.
슬플때
흥을 돋우면 모든것을 잊고 같이 즐거워 져야 되는데.
우리는 기분이 나쁘면 노래방에라도 가서 노래를 하고 마음을 풀어 버리지만,
너무 기막힌 슬픔을 풀어달라 주문을 받자 속수무책 인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슬플때는 슬픈 음악을 들으며 울고 또 울어야 하고
눈물의 샘이 마를 때까지 울어야 다시는 슬픈 마음이 돌아 오지 않을 것이다.
장구는 그나마 진양조나 또 다른 곡들을 반주식으로라도 연주하며 어떨지 모르겠는데...
설장구는 거의 때려부슨다는 사고로 일관하는 사람이 많아
속도는 빨라야 하며 박력이 있어야 잘하는 것 같고...
농악속의 설장구처럼 하지 않는다하여 어쩌고 저쩌고 말이 많고.
느린 음악은 아예 생략하고 공연할 때 연주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지루해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는 논리다.
사람들은 박력있는 부분만 좋아하고 그래야 잘하는 줄 안다.
그러나 그것은 느림의 미학을 모르고 감상하고 있는 것이다.
나역시 무대에 서면 그 문제 때문에 굿거리부분을 많이 넣지 않는다.
스스로 올가미에 빠진 설장구쟁이
느리고 슬픈 이 모습을 한을 제대로 가락과 음으로 그려낼 때
설장구는 진정한 설장구로 승화되지 않을까 짚어 본다.
나는 아담한 지하 30평을 세내서 며칠 전 이사 하였다.
신설동역에서 2분거리다.
대로변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큰 골목이다.
사람도 많이 다니고 널직해서 좋은 기분이 든다.
이곳은 누가 쫒아낸다며 야단 법석을 떨것 같지 않아 마음이 불안하지 않다.
이제 정말 조용히 살고싶다.
설장구를 이해하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스스로 인생을 즐겼으면 한다.
삶의 애환과 슬픔과 분노 그리고 진정한 얼과 한이 녹아든 그 모습이 오늘날 농악<풍물>이 되었으며.... 상업적인 기법과 대중을 위한 쑈적인 이미지를 구사하다보니 대중에 입맛에 맞춰진 모습들이 오늘날의 무대 공연을 선도하고 있는 듯 하여 입맛이 쓰다.
국악은 우리의 혼이며 뿌리다.
장구~ 특히 설장구는 어쩌면 장구를 더욱 값진 모습으로 가꾸어 나갈 미래의 꿈이 될 수 있는 분야다. 내가 싫고 좋고 단순한 나만의 이기적인 생각을 떠나 그런것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옆집 건물 분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죄송스럽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동안 본의 아니게 피해를 주었으니 무엇으로 사죄하겠는가....
장구는 장점과 단점을 똑 바로 알아야 발전을 할 것이라 믿는다.
멋있고 좋은 점만 이야기하다보면 단점을 바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삼년을 허송 세월 보내고 다시 시작하려 한다.
단원을 키우고 제자를 양성하고 작품을 만들 기초를 다지려 하던 계획이 엇나갔다.
고스란히 3년을 손해본 것이다.
말이 삼년이지 ....
정신적인 스트레스며 말 못할 고난이었다.
옆 건물에서 장구소리 때문에 시끄러워 사무실 사람들이 나간다고 했다며 손해배상 청구한다며 내용증명이 날아오고...학생들 받았다 수업료 반환하고 돌려보낸일이며... 허접한 환경속에서도 끝까지 남아준 제자들...
얼마나 고맙고 고마운지..
이제 이사간 곳은 지하여서 괜찮을 것 같다.
꿈의 보금자리...^^
행운이 함께 하길 바란다.
2006.5.10
글 박은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