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바람이 창문을 흔들어 아침을 깨우고 있다.배시시 눈을 뜨고 달력을 처다본다. 벌써 시월 초순이다.
올해 이루어 놓은 것도 별로 없는데 벌써 한해가 얼추 기울어 가고 있다.
시간은 자꾸 흐르는데 소득이 없으니 마음이 여유롭지 못하다.
아무리 바빠도 바늘 허리에 실을 매고 쓸 수는 없다.
차근차근 준비 하지만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 속성 때문에 마음이 흔들린다.
설장구는 멋지고 끝내주는 예술성을 내포하고 있지만 고생한만큼 인정 받기 어렵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하다보면 알 수록 더 어려워져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서 설장구는 진정한 깊은 맛을 만들기 쉽지 않은 것 같다.
고생한만큼 얻어지는 것이 별로 없다.
그러나 이과정을 지나고 보면 희열을 느낄 수 있다.
힘겹게 얻어지는 결실로 혼을 불 사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재물과도 속성이 멀고, 또 공연을 해도 그다지 시쿤둥한 기술적인 묘미만 바라보는 관객들로
부터 외면당하는 예술성의 존재에 대해 실연자의 방황이 예상된다.
전정한 꾼 들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대목이다.
가을은 설장구가 익어 가는 계절이다.
나락의 고통에서 해방되는 날씨이다. 좀더 숙연하고 결실있는 맫음을 위해 분발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꾼들이 설장구 하기 좋은 계절이 가을이기도 하다.
들녘에서 동구밖에서 마당에서 바람과 낙엽 위에 설장구춤을 추자.
가락 속에 삶의 여운과 낭만과 인생의 끼가 존재한다.
그러나 너무 깊이 빠지면 자신을 희생해야 할 숙명이 기다리고 있다.
감수할 자신 있으면 설장구를 사랑하라.
설장구는 보면서 박수를 치는 것 만으로 즐기고 있다 말할 수 없다.
직접 체험하고 또 두들겨 보고 춤을 추어야 제맛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가죽 속에서 살며시 튕겨져 나오는 소리가 매번 다르다.
소리의 진동과 촉감이 다르고 귓속에서 울렁이는 억겹의 흐름이 다르다.
거기에 빠져 나오기 힘들어 삶의 방식을 바꾼 사람도 있다.
그러나 유혹하지 않는다.
설장구를 좋아하고 사랑하기 이전에 설장구를 한다 말하지 말라....
아무리 설장구를 사랑하고 좋아하고 혼을 다 준다해도 설장구가 나를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않은 절망감이 있다.
바라지도 말고 기대하지 말며 그냥 좋아해달라는 설장구의 타고난 기질~속성~
설장구는 설장구일 뿐이다. 가을의 설장구~ 사색의 설장구~ 낙엽의 설장구~춤꾼의 설장구~
인간성을 상실한 사람이 설장구를 한다해도, 설장구는 설장구 혼자 알아 홀로 스스로 독립된 예술성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인간성과 설장구는 서로 따로 노는 것 같다. 설장구는 설장구대로....인간의 얄팍한 인간성은 각각의 성향을 따로 보존하면서, 그래도 설장구는 나름대로 아름답고 깊이 있는 예술을 내품고 있더라....나는 특이한 현상을 경험하고 보고 느꼈으며, 인간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작은 왕국에서, 더 이상의 횡포를 감내하며 이겨내려 노력하였지만, 결국 사람 본연의 자세를 무너뜨리는 작태를 용납할 수 없어, 스스로 영혼을 버리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물론 다른 것도 마찬가지겠지만....자신들의 욕심을 위해 명분을 버리고 살아가는 가벼운 삶에 동참 할 수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
사악한 기운을 가진 사람이 연주하는데도 아름다운 가락을 유지하고 있다면 이것은 혼의 마음을 떠난 기술적인 효과임에 틀림없다. 완벽한 혼의 존재가 없는 빈 껍데기의 눈가람일 뿐이다.
가을은 이런 모든것을 숨기지 않는다. 가을은 낙엽이 되기 위힌 준비를 하고 있다. 혼의 예술은 숭고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예술혼만이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혼의 예술성에서 멀어지고 진정한 꾼이라 말하기 어렵다. 기술자라 표현해야 할 것 같다.
마음따로 기술따로 ....예술가로 칭송받기 위한 첫번째 이유를 꼽는다면.... 언제나 인간미 넘치는 혼과 기술이 일치되어야 할 것이다.
기술자로 변모하기전에 진정한 인간다운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세상은 공평하지 못하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모든 것이 재편되는 세상이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예의와 의리도 돈 앞에서 맥을 못추는 세상에, 어떤 예술이 예술다울 것이며 혹은 진정한 값을 지녔다고 판단하겠는가? 아무것도 믿을 것이 못된다. 돈과 권력이 있으면 안되는 것이 없는 세상에 태어난 우리모두 가련한 희생자다. 가진자의 한없는 횡포와 무형의 존재 앞에서 추풍 낙엽처럼 떨어져 나가는 가을잎처럼 허접한 빈 껍데기다. 짓밟힌 양심이 파리떼들처럼 추접해 보일때....모든것은 낙엽처럼 찢어지고 결국 흙으로 돌아 간다. 남은 것은 파렴치요. 허무요. 위선의 그림자다. 존재가치조차 없는 피아노의 선율이다.
하늘이 검어지고 땅이 흰색이 되고나면 이 모든 것은 질서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또 내년의 가을이 되면 낙엽위에 앉아 슬픈 피리를 불자. 농익은 열매처럼 맛있는 설장구 소리 들리고 긴 인생은 황혼을 향해 날아 간다.
2006.
글 박은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