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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찾아서

제목 [기본] 전설의 설장구명인 김병섭-퍼옴 등록일 2018.01.08 19:59
글쓴이 박은숙 조회/추천 50366/0

 설장구명인 김병섭

2005-08-25 10:25:46, Hit : 3479
      http://kukak21.com

설 장 구 명 인 김 병 섭

      다시 들어볼 수 없는 설장구 명인 김병섭 19 - 1987은 전라북도 정읍 중농집 출신으로 열다섯 살부터 우도 농악에 꽃인 설장구를 처온 (김병섭, 호섭) 씨의 설장구를 이어받은 가락을 스스로 연마하고 다듬어온 세월의 멋이 들어 있다.
우도 농악의 으뜸으로 꼽히는 김도삼의 문하생 김학순, 백남길 에게 학습한 뚜렸한 계보가 자랑이며, 장구를 칠 때 기교는 배틀에서 베를 짜듯 잉어걸이, 안장거리, 엇부침 역음살이 등 소삼, 대삼, 음양 배합이 확실하게 학습한 가락이 뚜렷하다.
 김병섭은 열한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다니던 서당의 글 공부를 그만두고 형이 꾸며서 이끌던 농악단에 따라들어가 설장구를 두들리기 시작해 평생을 장고와 함께 한다.
하라는 글 공부는마다 하고 장구를 두드리더니 일생을 설장구로 살아온 김병섭을 보고 그의 어머니는 그것도 제 (팔자속)이라고 치부해버린다. 팔자속으로 학습하고 팔자속으로 두들겨온장구 장단을 불러내는 그의 발임은 장구춤으로 돋보이는 경지에 도가 텃다.
 정읍 상유마을 농악단은 그의 형이 만들고 농악기를 장만해서 만든 것이었다. 동네 농악이라 처음에는 농악 장단을 제대로 아는 전문가가 없었다. 정초가 되면 크게 굿판을 멀이게 되고, 그럴때를 대비해서 전문가를 모셔왔다. 그때 초빙되어 온 명인은 당시 57세였던 김학순 씨와 백남길 (60)씨등 김도삼 씨의 제자들이었다.
  이들은 설장구 장구가락과 발디딤을 베짜기에 비유해서 가르쳤다. 지금 병섭씨가 제자를 가르칠때 쓰는 발디딤 이름도 그 때 선생님들에게 배운 그대로 잉어거리, 안장거리라는 말로 가르친다.
이 농악단은 그가 장성해서도 가까운 마을에까지 이름이 날였던 농악단이였지만, 일제 말 쇠부처 공출로 끝장이 났다. 농악기를 모두 거두어 간 것이다.
「일본이 싱가포르를 함락했다고 정읍에서 각 마을 농악단을 모아 축하 공연을 하라는거야 그래서 경쟁이나 하듯이 농악을 자지러게 한바탕 두드리고 나니까 그 자리에서 쇠로 되는 악기는 모두 거두어가던군」꽹과리, 징, 나팔 등 놋 쇠로 만든 악기를 모두 공출로 빼앗기고 난후 농악도 자연 못하게 된다. 김병섭이 해방을 맞은 것은 징용으로 끌여가 탄광에서 광부로 일하다가 강복을 맏는 것은 함경남도 명천에 갔을 때었다. 곧장 기차로 서울까지 꼼밖 이틀이 지나 서울에 와서 서울역에서 사흘밤을 지내고 정읍 고향으로 갈수가 있었다. 고향에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을 모아 농악을 시작했다.
 「일본사람들이 거두어들었다가 못 가져간 농악가를 수소문 끝에 찾아내고 새로 구입한 악기도 있어서 금세 농악단을 꿈였다.」
 김병섭의 설장구 가락은 이제 귀중한 타악음악이 되었고, 그 가락을 배우려는 사람도 많이 늘어났다. 한때는 전북남원 국악원에서 여성농악단을 가르치기도 하고 서울에 와서도 가르치다가 나중에는 아주 서울로 근거를 옮겨 종로에 김병섭 설장구 학원을 개설하고 제자를 가르쳤다.
 김병섭 설장구 의상은 흰 바지, 저고리 위에 반소매 길이의 색동 끝동이 달린 붉은 괘자를 입고, 어깨와 허리에 청색, 황색, 녹색, 삼색 띠를 비껴맨 차림으로 우도농악의 엇부침 장단으로 설장구 춤을 춘다. 장구의 채편은 양으로 꽹가리 리듬을 따라가고, 궁편은 음으로 박자를 맞추면서 엇바꿔 치는 것이 설장구의 멋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장구 가죽도 쇠 가죽 말가죽 양쪽에 각각 섰는데 요즘에 개가죽이라서 소리맛이 달라졌다고 아쉬워한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농악장구 장단에 대한 관심이 늘어가고 김덕수 사물놀이가 국내외로 인기를 얻은 것을 보며 농악판의 명인들도 한자리에 모여봤으면 바라다가 84년부터 한국일보사와 국립극장, 명무전에서 최막동, 백남윤, 김병섭, 유지화 씨 등과 함께 장고 장단을 선보일 기회가 생겨 오랜 꿈의 하나를 이루어졌다. 이제는 제자 중에 외국인도 많아서 동·서양 합동 장고 장단으로 문화생 발표회를 갖고 싶어 했다.
 농악은 삼한시대 이전부터 정착 영농생활과 더불어 발전한 것으로 보이며, 농, 어촌의 집단적 축원행사, 농번기나 일이 끝난후 높이, 남사당의 걸입패 놀음등에서 연주되어온 것으로 이제는 타악음악으로 다듬어저 예술로 승화되고 있다.

전설의 설장구 명인 김병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