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촉촉히 내리는데 정처없이 이곳을 떠나고자 마음 먹었다.
이곳은 내가 뿌리를 내리고 설장구를 연구할 장소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이곳이 정이 들었으며, 또한 이곳에서 만난 여러 제자들에게,
많은 애정과 전설의 설장구 꿈을 실현시키려 노력하였다.
순수하고 좋은 면을 지닌 제자들에게 미안함으로 고개숙인다.
창문을 열고 바라보니 동묘의 파릇파릇한 새싹들이 봄비를 반기며 아우성인데~
나는 쓸쓸한 미소를 머금고 슬픈 마음으로 안녕을 고한다.
꿈에 손짓하며 오라고 초청하더니~
이제 자리잡고 꿈을 펼치려는데, 날 벼락같은 일들이 어디선가 솟아났다.
그것은 인간으로 인한 일들이며, 누군가 나를 쫒아내려고 꾸민 사악하고 비겁한 일련의 사연들이다.
수십년 노력하여 얻은 금쪽과도 같은 예술이, 그곳에서는 한낱 소음으로 변해 사람들의 원성을 사더니~
급기야 그들은 나를 쫒아내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더라....
구청에 신고하고, 112 부르고, 시청에까지 신고를 하더니...
마지막에 폭력까지 행사하고 수업 방해를 하니, 어디 무서워서 사람이 살겠는가?
아무리 방음을 해도 그들 귀에는 들리는 모양이다.
이곳은 사람이 살 곳이 아니다. 이곳은 인간이 아니라 오로지 신들린 사람이 사는 곳이다.
나는 거의 실신상태가 되어 백지처럼 변해버린 상념을 안고 이곳을 떠난다.
그들은 내게 속삭였다.
만약 굿판에서 연주를 해준다면, 내가 이곳에서 시끄럽게 해도 용서를 해준다고 하네~
화~ 정말 기막힌 발상이며 오묘한 상부상조다.
전설의 설장구가 굿쟁이의 연주자로 전락할 위기다.
그래서 나는 떠난다.
정처없이 개나리 보따리 이고, 지고, 노숙자처럼 헤매다 아무곳에나 자리 잡으련다.
전생에 무슨 죄가 많아 이런 고통이 따르는가?
동묘 연구소마저 나를 버리니 나는 갈 곳이 막막하다.
먼지처럼 털털이가 되어~
이제 하는 수없이 신촌으로 간다.
연구소 이사가 다섯번째다.
내가 신촌을 생각해낸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곳은 선생님이 설장구를 연구하던 곳이기에 많이 망설였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갈 곳이 없기에 무조건 가야 한다.
혹여 어떤 시선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걱정되지만...
그러나~
누군들 이런 사연을 안다면~
이해하리라 믿는다.
팔자 소관인지, 아니면 운명인지, 왜 ~ 하필 그곳으로 또 가야만 하는것인지~
우연인지 필연인지 하지만, 망설일 시간이 없다
이곳은 지옥이다. 하루가 여삼추다. 일년동안 마음을 졸이고 살아왔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보이지 않는 실체를 의식하며~
이제 ~
설장구는 동묘를 떠나 신촌으로 간다.
잘있거라 동묘여~ 음산한 추억이여~
담벼락에 작고 소담한 오동나무가 자라고 있는 이곳이 좋았다.
그러나 이제 헤어져야만 한다.
애증이 서린 이곳에서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과도 작별이다.
신촌은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마음만 먹으면 올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
즐거움과 행복을 가득 나누던 소중한 사람들이기에 미안함으로 사과한다.
우리 또 다시 만나는 날이 오면
그곳에서 어떤 식으로든지 열매를 맺었으면 한다.
전설의 선생님을 기억하며~되새기며~가락을 되살리며~
설장구의 뿌리는 썩지 않고 영원히 보존 되어야 하기에~
가시밭길 마다하지 않고 분투하리라~다짐한다.
동묘를 떠나면서 ~
2009.4.21
글 박은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