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대학 감포도량 방문 및 감포바다 방생체험 기행문~ 아침 일찍 일어나서 택시를 타고 재기동에 있는 관광버스가 있는 곳으로 가고 있다. 사실 새벽 5시에 집에서 나가야 하기 때문에, 초저녁부터 잠을 잘 수가 없다. 왜냐하면 피곤을 달고 살다보니, 어정쩡한 상태로 있다가는 아무래도 잠이 깊이 들어 새벽에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초저녁에는 그런대로 버틸 수가 있었는데, 12시가 넘자 눈이 뻑뻑해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1시에 목욕을 하고 머리를 감고 화장을 하고 옷을 입고 보니, 이제야 겨우 2시가 넘었다. 의자에 잠시 기대고 눈을 감았는데, 아무래도 깊은 잠에 빠질 것 같아 고민이다. 딸아이가 핀잔을 준다. 아이처럼 무엇이 그렇게 설레여서, 벌써부터 다 챙기고 있느냐는 것이다. 나는 아무래도 과거부터 무엇을 한다고 하면, 미리부터 모든 것을 전부 준비해야 하는 습성이 있어 그런 모양이다. 조금이라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불안해서 그렇다. 나이가 들어서도 습성은 막을 수 없다. 의자에 기대고. 어영부영하다보니 4시 40분이다. 시간은 참으로 빨리 날아간다. 가방을 메고 신발을 신고 대문을 잠그고 살짝 집을 나선다. 층게를 내려가니 집 근처에는, 개미새끼 한마리 없이 고요한 적막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약간의 긴장감에 큰 길로 나선다. 마침 신호등에 파란불이 들어와서 얼른 길을 건너간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버스가 오지 않아, 기다리고 있던 택시를 탔다. 택시 운전사는 상냥하게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다. 빨리 가는 길이 있었으나, 차라리 가로등이 많은 길을 선택해서 가자고 했다. 나는 항상 어둠이 싫다. 밝은 빛이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이며 길에서도 그렇다. 돌고 돌아 재기동에 도착하니, 이제 5시 10분이다. 여기서 또 기다려야 하는 마음은 밤바람처럼 냉하다. 허둥거리며 길을 왔다갔다 하다보니, 어느새 10분이 지나간다. 지하철에 있는 화장실에서 10분을 보내고, 다시 길거리로 나와서 지나가는 자동차를 세고 있다. 참 할일도 없는 사람이다. 왜 이렇게 마음이 바쁜지 모르겠다. 좀 늦게 와도 되련만, 왜 이렇게 서두르는지 모르겠다. 이것은 타고난 성격 탓이다. 잠간 있으니 5시 30분이다. 길을 건너서 골목길로 들어서니, 버스가 와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버스는 멀리서 기다리고 있다. 잠시 망설이고 있는데, 신도님들이 한 분 두분 오신다. 모두 간단하게 차림을 하고 따뜻한 잠바나 털옷을 입었다. 아무래도 감포 바닷가에서 방생법회를 한다고 해서, 바닷바람이 추울 것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본인도 태어나서 방생 법회는 처음이라, 마음이 설레이고 아이처럼 마음이 붕 떳다. 회색 도시에서 먼지를 마시며 지내기를 반복하더니, 오랜만에 맑은 공기가 가득한 감포에서 하루를 보낸다는 생각에 기쁨이 가득하다.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설레이는 감포의 바닷가에서 혹은 감포의 길거리에서, 감포에 있는 한국불교대학의 도량에서, 부처님과 무문관에서 1000일 결사 항진을 하고 계시는 무일 우학 큰 스님의, 걸어잠근 방문의 자물통에서 안개처럼 품어져 나오는 기를 받아, 설장구를 위해서 얻을 것이 있다면, 두 손 모아 합장하고 오체투지로 정성을 다할 것이다. 벌써 6시가 되었다. 버스가 슬그머니 오더니 문을 연다. 몸이 벌써 얼어서 얼른 버스위로 올라갔다. 자리가 없어 겨우 예약된 좌석이라 맨 뒤에 첫번 째 자리다. 다행히 그것이라도 얻어 탈 수 있으니, 천만다행이다. 이번에도 감포에 내려가지 못하면, 또 언제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매일 바쁘다는 핑게로 가보지도 못하였으나, 한번 쯤은 꼭 가보고 싶은 곳이라는 것을 진즉부터 마음에서 손짓을 하고 있었다. 모두 버스에 올라 자신들의 좌석을 찾아간다. 가녀린 마음을 가다듬고 창밖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고, 또 전화통을 붙들고 누군가와 전화를 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 저것 서로 모르는 신도들끼리 인사도 하고 짝궁과 얼굴도 익혔다. 버스는 조용히 스르르 물 흐르듯이 굴러간다. 어둠을 헤치고 나아가는 돛단배처럼 마음이 이채롭다. 잠을 못자서 그런지 머리가 아프다. 뇌는 아우성을 치며 머리를 쿡쿡 찌른다. 가시나무월계관을 머리에 이고 가는 숫사자처럼 의기 양양하기는 하나 금방 졸음에 이기지 못하고 머리가 뒤로 나자빠지는 것도 모르고 코를 골았다. 정신줄을 놓고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아침 예배를 본다는 말에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썼다. 인솔자의 마이크 소리를 들으며 예배를 시작했다. 동대문 도량의 주지스님의 말씀을 듣고 또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으며 버스에서 예배를 보는 것 또한 새롭다. 음악이 흐르듯이 목탁소리가 그윽하게 들리는데, 경을 읽는 스님의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게 맑고 청아하다. 아주 많은 세월 익은 된장처럼 세련되고 단련된 경을 읽는 소리다. 경을 읽는 스님이 누구신지 많이 궁금해진다. 불교대학에 들어와서 공부를 하다보니, 너무도 좋은 진리의 맛에 취해서 자신의 본분을 잊은 듯이 빠져 들었는데, 이제는 어느정도 진정이 되었다. 도를 닦는 것은 스님이나 재가 불자나 목표가 거의 비슷하다. 질적인 면에서 차이는 엄청나지만, 부처님의 진리를 쫒는 입장에서 작고 보잘 것 없으나, 하루에도 조금씩 진리의 감로수를 마시는 형국이다. 나이가 젊었더라면, 스님처럼 머리를 깎고 구도의 길로 들어가는 것도 좋은 일이라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나이제한 때문에 그것은 물 건너간 일이다. 부처님의 생각과 뜻을 고취하면서, 나름대로 스스로 즐기는 것 또한 나쁘지 않다. 이생각 저생각으로 바쁜데 지금 법화경을 한참 외우고 있다. 묘법연화경...부처님께서 마지막에 보살들을 위해서 설법한 위대한 진리의 말씀이다. 참으로 대단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리의 총 집합체다. 나는 법화경을 배우고 나서, 이제야 겨우 부처님의 생각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한번 책을 배웠다고 해서 그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다. 평생 공부해도 그것을 깨우치지 못한다는 것은, 평범한 중생의 입장에서 어쩔 수 없다. 한 번 책을 배웟다는 것은, 한강에서 모래 한알 정도의 앎이라는 것이다. 작은 불경 책을 꺼내서 지금 외우고 있는 곳을 찾았다. 모두들 힘차게 경을 읽는 소리가 낭랑하다. 법화경 마지막 부분을 읽고나니 목탁 소리가 끝이 났다. 새벽을 여는 소리~ 안개속에서 길을 찾아주던, 싱그러운 아침 이슬같던 목탁소리가 항상 머리속에서 맴을 돈다. 목탁소리는 경을 읽는 소리에 맞춰서, 뒤에서 받쳐주는 음악적인 역할을 한다. 만약에 목탁소리가 없이 구음으로 경만 읽는다면, 아마 경을 읽는 아름다운 화음의 조화라고 할까? 그런 어떤 어울림의 현상이 없을 것 같다. 빈약한 부분을 서로 서로 도와주며 하나의 세계를 이룬 것처럼, 부처님의 진리의 뜻이 들어있어 삼박자가 아우러진다. 참으로 멋진 생각이었다. 거기에다 108번뇌의 상징인 염주가, 더욱 번뇌의 깊이를 파고들어가고 있으니, 어느 것 하나가 빠져도 절대 안되는 일이다. 스님들께서 법의를 입고 진지한 표정으로, 경을 읽고 집도할 때 모든 것이 조화롭게 부처님을 상징하고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그러나 죽림정사처럼 만약에 절이 없었다면, 그것 또한 진리를 떠나서 약간은 초라하게 보일 수도 있다. 도를 많이 닦은 스님들께서는, 절이 없이 어느 암자나 혹은 동굴이나 혹은 또 다른 곳에서 공부를 하시더라도, 진리의 깊이를 따져, 그곳이 모두 불국토가 되니 초라할 것이 하나도 없다 할 수 있다. 잠깐 졸았는데, 그것으로 뇌가 만족을 했는지, 머리가 지근덕거리던 것이 괜찮아졌다. 맑은 정신으로 창밖을 내다본다. 생판 모른 곳의 풍경이 내달린다. 벌써 고속도로에 들어온 모양이다. 만약 고속도로가 없었더라면, 아마 흙길을 텅텅 거리며,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버스가 숨을 헐떡거리며, 달리고 있을 것이다. 발전이라는 것은 참 좋은 것이며, 삶에 있어 꼭 필요한 것이다. 과학이나 인간의 마음이나, 불도를 구하려고 애를 쓰는 중생도 매일 매시간 매초마다, 조금씩은 발전이 있어야 보람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항상 그자리만 맴돌고 있다면,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을지 그것도 의문이다. 불교를 공부한지 벌써 3년째다. 세월은 너무 빠르고 해놓은 것도 없이 물흐르듯이 가버리고,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부처님의 진리속에서, 혹은 큰 스님께서 항상 내려주신 법어에서 세상사는 이치와 구도의 묘미를 얻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있을 것이라 사려된다. 스스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있다면, 그것은 비록 세상에서 성공하지 못했다하더라도 조용히 묵묵하게 남은 인생을 잘 보낼 수 있다고 본다. 벌써 옥천의 휴계소에 도착했다. 모두 화장실에 가느라 내려서 뛰어가는 사람, 천천히 걷는 사람 가지각색이다. 화장실 앞에 도착하니 버스가 4대나 돼서 그런지,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화장실 앞에 진을 치고 늘어섰다. 급하니 남자 화장실까지 점령해서, 난리법석을 떨다가 겨우 일을 보고 내달리니 버스가 떠나려고 시동을 걸고 있다. 아무리 급해도 볼 일은 보고 가야지 하며, 손까지 씻고 빠른 걸음으로 내달리던 사람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이왕 늦은 것이니...설마 두고 가겠는가? ...등등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다는 속담이 있는데, 그래도 믿어보자... 재촉하는 인솔자의 목소리를 귓가에서 내쫒으며..버스에 올랐다. 자리에 앉기 바쁘게 작은 물병과 김밥과 떡과 귤이 든 봉지를 받았다. 마침 배가 고파서 허덕거리고 있었는데, 김밥을 게눈 감추듯이 먹어치웠다. 맛이라는 것은 배고풀 때는 무엇이든지 맛이 있다. 배가 부를 때는 무엇이든지 맛이 별로라는 생각이다. 가장 필요로 할 때 필요한 것을 충족시켜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정치이며 또한 진정한 배움이며 또한 진리의 본래의 모습이다. 커피를 마시고 싶은데, 화장실 가고 싶을 까 봐서 참았다. 물은 더욱 참아야 햇으며, 팍팍해진 입을 달래야 하는데 마땅한 것이 없다. 그렇다고 혼자 주저리 주저리 노래를 할 수도 없고, 상당히 고민이 된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고속도로는, 마치 입을 벌리고 있는 모래바람 같다. 바람 소리가 굉장하다. 길가에 늘어선 가로수가 잎이 하나도없이 비루하게 서있다. 나뭇가지위헤 가냘프게 새들이 집을 지어 놓았다. 마치 예술품처럼 대롱거리는 것이 약간 위험해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새들의 가냘픈 집은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끄떡없다. 인간의 마음도 온갖 풍상에도 끄떡없이 이겨내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바람에 흔들리고 사람에 흔들리고 또는 물질에도 흔들린다. 이것이 진리를 배워서 마음을 튼튼하게 하는 것이 이유라는 것이다.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쑤시고 어깨가 얻어 맞은 것처럼 아프다. 오래 의자에 쭈구리고 앉아 있어 그런지, 혈액순환이 되지 않은 탓이다. 앉아서 배 운동을 하고나서 기지개를 켜보기도 하고, 머리를 좌우로 돌려보기도 하면서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기도 한다. 이제 경산을 지났으니, 곧 경주시에 도착할 것이다. 경주시에서 느낄 수 있는 하나의 특징이 있다. 모든 집들이 거의 기와집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유서깊은 곳이다. 한 나라의 수도였던 곳이기에, 땅을 파면 이곳 저곳에서 문화재가 쏟아진다. 볼거리도 많고, 마음의 때를 정화시킬 수 있는 사랑스러운 곳이다. 과거에 가족들과 경주시에 와서 여러가지 문화재를 비롯해서 많은 구경을 했었다 가족들과 함께 와서 보는 즐거움과, 또 신도들과 함께 와서 보는 맛은 또 다르다. 경주를 지나가면서 재미있고 귀여운 모습을 봤다. 파출소가 있었는데, 기와로 이어서 만들어진 이층 집이다. 너무도 귀여워서 짝궁에게 이야기 햇더니, 짝궁은 으 핫하...너털웃음을 웃었다. 참으로 재미있는 발상이다. 서울이나 대도시에서도 파출소나 경찰서를 기와를 이은 한옥으로 지어서 사용한다면, 상당히 좋은 효과를 내지 않을까? 하고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에게 공포나 엄포의 대상이 되어 미리 조심하게 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점이나, 친절하고 친숙한 이미지가 깃들어서 사람들에게 처음부터 죄를 짓지 않게 하는 것 또한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점이 될지도 모른다. 감포는 경주에서 더 들어간다고 한다. 자세히 살펴보니 경주시에 속한 감포읍이다. 경주에 도착해서도 감포까지 가는데 하염없이 멀다. 정말 지루하다. 왜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버스를 타고 다녀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쉽게 다니는 방법은 없는 것인지... 어느 지역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가면 어떨지... 단체라 사람이 많아서, 관리를 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올 것 같다. 말은 쉽지만, 상당히 먼 거리다. 버스가 투덜거리며 비틀거리며 겨우 감포읍에 들어서서, 한참을 기운 빠진 뱀처럼 흐물흐물 거리며 기어 가다보니, 멀리 바닷가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너무도 깨끗하고 조용한 바다라는 느낌이 든다. 성난 파도의 입김도 없고 찰삭거리는 작은 흐느낌만 존재한다. 바닷가에 예쁜 정자도 보이고, 늘어서있는 숙박집이나 노래방도 있다. 카페도 보이는 것이 아무래도 해수욕장이 다가오는 모양이다. 좁은 곳으로 들어서니 버스가 많이 늘어서 있다. 대구 큰 절에서 이십대가 넘은 차가 와서 늘어 서있고, 전국에 있는 다른 도량에서도 신도님들이 참석해서 아마 거의 2000명은 족히 된다고 한다. 세보지 않았으니 잘 모르겠으나, 어느 신문에서 읽어보니 2000명정도 된다고 적혀 있었다. 버스가 많아서 들어 설 곳이 없을 정도다. 우리가 탄 버스는 행길 옆에 늘어 서있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서 부지런히 바닷가 해변으로 내려갔다. 벌써 전국에 있는 신도들이 모여서 기도중이고, 스님들께서는 법회를 열고 계시는 중이다. 우리는 서울에서 내려온 신도들이기에, 부지런히 모래사장을 한바퀴 돌아서 바닷가를 향해 기도하고 또 스님들께 오체투지로 절을 했다. 불교에서는 본래 "불, 법, 승,중에서 스님들을 부처님 모시듯이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왜냐하면, 스님들께서는 부처님의 경전을 잘 배우고 깨우쳐서, 나약한 중생들을 잘 보살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나, 부처님의 맥을 이어가는 법승이기 때문이다. 불문제자는 무조건 스님에게, 부처님 대하듯이 해야한다고 하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것은 사실이다. 문무대왕릉이 있는 바닷가에서 방생법회를 하고 있으니, 참으로 감개무량하다. 우리나라를 침범한 왜구들이<일본인>들이 얼마나 지긋지긋했으며, 해룡이 되어 동해바다를 지킬 것이라는 문무대왕의 위대한 말씀을 되새기면서, 참으로 좋은 경험에 말문이 막힌다. 대한민족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 모두가 사랑하고 아끼는 이 나라를 영원히 지켜주실 것이다. 6시에 서울에서 떠나 거의 5시간이 넘어서 도착했으니 참으로 먼 곳이다. 오체투지로 스님들께 절을 하자, 마지막으로 목탁소리가 똑 또르르르.....스님들의 법회가 끝이 났다. 이제야 도착했는지, 아직도 신도들이 게속 해변으로 들어오고 있다. 스님들은 법회는 끝이 났으나, 계속 말씀을 하시면서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처음부터 법회에 참석하지 못해 많이 아쉬움이 남았다. 왜냐하면 방생이라는 말은, 잡혀있는 새나 물고기를 놓아주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이 잡은 새나 물고기를 내가 사서 놓아주는 것이라는 말도 된다. 한 번 꼭 해보고 싶었던 방생이다. 바다를 바라보고 기도를 한 것을, 오늘의 최상의 일로 봐야 할 것 같다. 보통날에 바다를 바라보는 일과, 방생법회를 하면서 바라보는 바다는 너무도 다르다. 정말 위대한 바다에 대해서, 경의로움이 솟아오른다. 그것은 부처님의 뜻에 따라 잡혀있는, 생물을 놓아주는 작업을 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스님들의 멋진 법복이 바람에 휘날리며 차가운 바닷가의 바람에 얼굴이 새파랗다. 참으로 공부를 많이 하신 분들이라 얼굴에서 윤기가 흐르고 지식이 들어있는 안구의 빛이 남다르다. 부처님이 1000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탁발을 나갈 때를 생각해보니, 정말 기가막힌 멋진 장면이라 입이 딱 벌어지고도 남을 일이다. 대 여섯 명의 스님께서, 바람에 법의를 날리며 법회를 하시는 모습이 정말 멋이 줄줄 흐르는데, 만약에 100명의 스님들이법회를 한다 생각만해도 굉장한 충격인데, 부처님과 1000명의 제자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뻥뚫린다. 청량한 날에 많은 신도들과 함께하는 스님들께서 아주 행복한 표정이었으며, 최선을 다하고 난 후의 만족감이 얼굴전면에 나타나기도 했다. 쏟아지는 햇빛과 소금기 흐르는 바람과 파도가 찰랑거리며 조금씩 출렁거리니, 여운이 흘러 기도의 내용이 무엇이냐에 따라, 모두 소원이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분위기다. 소원을 한보따리씩 주워담아 가슴에 품고 우리는 감포도량으로 가야한다는 말에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딱딱한 시골길을 걸어서 작은 실개천을 옆에 끼고 작은 마을을 사이에 두고 계속 길을 재촉했다. 작은 산과 집집마다 크고 작은 엄나무가 집을 지키고 있는 풍경이 낮설지 않다. 강아지도 꼬리를 흔들어대고 할머니들은 물건을 팔려고 이것 저것 길가에 내놓고 하나라도 팔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가격도 천차 만별이고 물건도 썩 좋아보이지는 않다. 그러나 이것이 어촌에서 산 것이기에, 고기를 비롯해서 농산품도 국산이라는 것은 확연한 사실이다. 신도 몆분이 산으로 우르르 몰려가더니, 꽃을 꺾으려고 한다. 노란색이 깃든 예쁜 야생화다. 이름은 잘 모르겠으나, 아직 봄이 오지 않았는데, 이곳 산에는 벌써 야생화가 듬성듬성 꽃을 피우고 우리를 맞이 하고 있었다. 누군가 "아이구" 부처님 법을 배운 사람들이 어떻게 꽃을 꺾을 생각을 하나, 참 공부를 아직도 많이 배워야 겠구만," 하고 혀를 찼다. 그렇다. 그것은 말이 되지 않은 일이다. 그 야생화는 노란 꽃을 피우기 위해, 겨우내 얼마나 땅 속에서 추위와 싸우면서 움추리고 고생 끝에 꽃을 피웠을지, 그 여린 생명을 어찌 그리 쉽게 꺾을 수 있단 말인가? 나도 한마디 하면서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상당히 오해를 하고 있었던 부분이다. 몇명의 신도들이 화들짝 달려가더니, 스마트 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크 흐흐.... 잠시 오해를 했다. 오해란 사람을 이상하게 만들기도 하고, 잘못하면 서로 원수가 되기도 한다. 좀전에는 아직 공부가 덜 된 사람이라고 몰아붙혔는데, 지금 보니 사진 예술가라는 칭호를 사용하기에 아깝지 않다. 갑자기 그들이 야생화 꽃을 찍는 사진 예술가로 보인다. 같은 꽃을 모두 바라보았는데, 그들만이 나비처럼 꽃을 찾아가는 기분을 알고 있는 것이다. 노란 꽃술이 바람이 하늘거리며 춤을 춘다. 바람이 하늘하늘 꽃잎을 날리며, 수즙게 피어있는 노랑 야생화를 건드린다. 너무도 사랑스럽고 소중한 자연의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순간적으로 한꺼번에 몹쓸 사람으로 매도해버렸는데, 꽃을 사랑하는 마음을 보니, 행위가 아름다고 존경스럽다. 이것은 마음의 변덕이다. 감포의 야생화는, 누군가의 설장구를 닮았다. 가녀린 몸으로 비바람을 맞고 추위에 떨면서도, 한송이 노랑 꽃을 피우기위해서 겨울동안 땅 속에서 참고 이겨낸, 그 정성이 지극하고 사랑스럽다. 노랑색의 꽃잎은, 햇빛을 받으며 여유있게 웃고 있었다. 듬성 듬성 피어있는 꽃들이 비록 크지 않고 작아서 땅위에 납작 엎드려 있었으나, 제법 눈에 띄게 아름다웠다. 지금은 자라고 있어서 어느정도 키가 될 지 알 수 없으나, 봄이 오면 제법 꽃다운 모습으로 이 산 구석구석까지 꽃의 나라를 만들 것이다. 끈질기고 인내력이 강한 야생화의 기질이, 누군가를 닮았다. 야생화~ 말 그대로 인내와 집념의 상징이다. 감포의 야생화는 나의 설장구를 닮았다. 한참을 씩씩거리며 올라가니, 멀리 황금색을 옷을 걸치고 인자한 미소로 부처님이 서계시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한국불교대학감포도량"에 도착한 것이다. 참으로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프고 바람에 눈물이 마르지 않았는데, 기꺼이 도착하고야 만 것이다. 한 번 시작하면 모든 것들은 멈추지만 않는다면, 끝을 보게 되는 것이 자연의 순리며 진리다. 멀리서 부처님을 보고 기도를 올릴 때만 해도 눈을 마주치고 있는 것이 행복이었는데, 가까이 갈 수록 눈높이가 맞지 않으니 올려다봐야하는 입장에서 부처님은 너무도 태산처럼 크기만 하다. 부처님께 기도를 올리고 터벅터벅 걸어올라가니, 대구 큰 절의 주지스님께서 지나가신다. 인사라도 하고 싶으나, 마음에서 수즙음이 솟아올라서, 어색하고 말도 건네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주지스님은 바람처럼 스쳐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참으로 못난 마음이다. 큰 소리로 인사라도 하고 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다음에 만나뵙게 되면, 꼭 인사라도 할 생각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산세가 참 좋다. 풍수지리에 대해서 자세히 공부하지 못해 확실하게 글을 쓸 수 없으나, 쬐끔 얻어 들은 기억으로 보면, 좌청용 우백호가 분명하게 들어맞는 곳 중앙에 대웅전이 들어 서 있다. 아래에 물이 흐르고 있으니 필시 이곳은, 아주 불법이 흥행할 수 있는 길지가 분명하다. 좌우로 뻗은 기상이 꽤 멀리 가도록 맥이 끊어지지 않았다. 과거에 부처님께서 이루려고 했던 불국토가, 아마 이곳 감포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웅전으로 곧 바로 올라가지 못하게 하고, 멀리 빙 돌아서 대웅전으로 들어가게 황토길을 만들어 놓았다. 먼 곳에서 걸어와서 빨리 절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았으나, 대구큰절 주지 스님의 말씀을 새겨들어서, 대웅전 정면으로 들어가지 않고, 지금 열심히 시큰거리는 발목을 부여잡고 절뚝거리며 걸어서, 노랑색이 깃든 황톳길을 씩씩거리며 올라가고 있다. 이렇게 어렵게 길을 걸어서 부처님 집으로 가야, 불법에 의한 내공이 생기고 건강이 좋아지고, 공덕이 들어가는 것인지, 입에서 흐흐 소리가 절로 난다. 지름길을 두고 돌아서 가는 이마음...요즘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는 정 반대의 현상이다. 무엇이든지 빨리빨리 해야 식성이 풀리고, 또 빨리빨리 공부를 해서 알아야 속이 평하고, 또 물도 빨리 빨리 마시고, 집도 빨리빨리 지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요즘 현상이다. 그러나 도를 닦은 방법에는 천천히 무엇이든지 천천히 해야 하는 것이 느긋함이다. 아마 천국으로 가는 황톳길이거나, 아니면 부처님의 몸에서 솟아나는 금빛같은 길이라 해서 황토를 뿌린 것인지, 암튼 새로운 기분이 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차라리 이 길을 소원을 이루어주는 "소원길"이라고 이름을 붙이거나 혹은 "불국토에 이르는 길"이라는 팻말을 써 붙히거나 아니면, 또 다른 좋은 길의 이름을 선정해서 팻말을 써 놓으면, 정면으로 가라고 해도 가지 않고 이길을 걸어서 부처님 품으로 걸어갈 것이 분명하다. 길가에는 대나무가 솔솔 바람을 일으키더니, 신도들의 땀방울을 식혀준다. 나중에 대나무가 우거져서 큰 대나무가 되면, 아주 좋은 멋진 길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대나무를 심은 것을 보니 아무래도 '죽림정사"를 잊지 않고 기리기 위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죽림정사는 부처님이 살아 생전에 "마가다국의 왕사성부근에 있는 불교최초의 사원이다." 붓타가 깨달음을 이루고 왕사성을 찾았을 때, "칼란다"가 붓다에게 기증한 죽림동산을 "밤비사라왕"이 지어서 붓다에게 바친 정사다. 라고 사전에 쓰여 있는 것을 옮긴 것이다. 어려서 가본 속리산의 오리숲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머릿속에 남아 있다. 이길은 반드시 멋진 길이 되도록 힘을 써서 잘 가꾸어서, 반드시 감포도량의 명물이 되기를 소망한다. 걸어갈 때 많은 생각이 들었다. 편편한 것 같으면서도 경사가 져서, 만약에 눈이 내린다면 상당히 미끄러워서 걷기 어려운 길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차라리 층게를 만들어 놓으면 어떤가 하고 생각하기도 했고, 불국토로 이어지는 계단 일 수도 있고, "수미산"으로 가는 길일 수도 을 것이라 판단된다. 이 길을 평범하지 않은 스토리를 만들어서 유명한 길로 만들면, 신도들도 이 길을 가보기 위해 일부러 찾아올 수도 있는, 그런 아이디어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다. 오늘은 아직 겨울인데 바닷바람도 차지 않고, 햇빛은 유난히 총총하게 빛을 내려보내줘서 겨울 옷중에서도 가장 두꺼운 옷을 입고 가서, 땀은 비옷듯이 쏟아지고, 솜이 들어있는 바지를 입어서 그런지 몸이 뚱뚱해져서 걸음도 걷기 불편할 정도다. 신은 운동화를 오랜만에 신어서, 오히려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다. 차라리 구두를 신고 올 것을 하고 후회를 했다. 대웅전에 도착해서 부처님께 기도를 올렸다.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니, 어쩔줄을 몰랐다. 자리가 빼곡하게 들어설 자리조차 없기 때문이다. 한 귀퉁이에 넙죽 엎어져서, 진심어린 마음을 꺼낼 시간도 없이 절만 하고 밖으로 나왔으나, 그래도 할말은 다 했다. 이 산중에 감추어진 보물처럼 숨겨진 절터에서, 이렇게 많은 신도들이 찾아와서 부처님을 접견하니, 이것이야말로 불국토가 아니고 무엇인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곳은 범상하지 않은 대단한 기가 서린 곳이다. 이 곳에서 부처님께서 이루고 싶어 하시던 불국토를 이룰 수 있도록, 모두 한 마음으로 기도했으면 한다. 아직은 불사가 완성되지 않았으나, 앞으로 할일이 참 많은 불사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부터 시작인데 하나하나 연구해서 하다보면, 부처님의 생전에 보여주었던 그 성대한 불국토의 의지를, 이곳에서 감포도량에서 이루어졌으면 하는 생각을 해보며, 슬며시 좋은 생각으로 미소를 머금었다. 점심을 간단하게 먹고, 기와한장을 사서 소원을 비는 글을 썼다. 그곳에 가족의 소원을 이루어 달라는 글을 쓰고 왔다. 와서 생각하니, 참으로 부질 없는 생각이 들어 부처님께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감포 도량의 무궁무진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라고 써야 원칙이다. 아직도 중생의 때를 벗지 못햇다. 참으로 한심스러운 영혼이다. 이렇게 개인적인 욕심에 눈이 어두어서야, 어디 진정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하다. 점심을 먹고, 무문관에서 1000일의 정진을 하고 계시는 스님들이 계시는 곳을 두손 합장하고 한바퀴 돌았다. 정적이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 모두 입에 자물쇠를 채우고, 두 손을 합장하고 신성한 그곳을 조용히 근엄하게 존경의 발걸음으로 사쁜하게 걸었다. 큰 스님과 또 다른 스님들 열분께서, 3년동안의 반을 그곳에서 방문을 걸어 잠그고 정진하고 계시는 곳이다. 하루 한 끼 식사를 하시고 열공하는 진리의 위대한 대업이 그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그중에서 누군가는 반드시, 다음 생애는 분명하게 또 다른 부처님이 되실 분들이다. 아마 우학 큰 스님은, 래생에 미륵 부처님이 되어 오실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큰 스님의 덕망과 불꽃처럼 타오르는 부처님의 진리를 강의하는 그 모습에서, 진정한 부처님을 보았다. 평생에 내가 찾아 혜매던 목마름의 원천을 그곳에서 찾아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진리의 목마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항상 무엇에 쫒기듯이, 아니면 퍼내도 퍼내도 알 수 없었던 목마름의 비밀이 바로 그것이었다. 깨달음의 진실이 무엇이 되었든지, 그것을 찾아냈다는 것이 중요하다. 원목으로 둘레를 쳐놓고 밖에 하늘조차 내다볼 수 없는, 감옥같은 그곳에서 철조망은 또 무너져 내린 한숨마냥 38선을 생각나게 한다. 나올 수도 없고 또한 들어 갈 수도 없는 그곳은 비록 몸은 갇혀 있으나, 마음은 저 하늘의 허공을 날고 있을 것이라 사려된다. 빈 허공에 창살없는 감옥의 의미를 날려버리고, 창공을 떠오르는 아침 햇살처럼 혹은 당장너머 소롯히 피어오르는 작은 꽃순처럼, 예쁘게 아름답게 곱게 그리고 원대하게, 수미산의 꼭대기에 날아오르는 한마리의 독수리처럼, 힘차게 내일을 위해 생기를 잃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작년 가을에 심었던 수세미가 말라 붙어서, 원목의 귀퉁이를 부여잡고 납짝 엎드려 있다. 그것을 보니 익어가는 내 나이를 생각나게 한다. 인생은 생각할 수록 허망하고 외롭고 고독하다. 나의 인생이 하루하루 잔 주름을 지어가고 있을 적에, 세상은 너무나도 변화가 무쌍하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하기 쉽다. 이제 이곳에서 큰 스님의 기를 받고, 또 열분 스님들의 기를 받아 내일을 향해 달려가야 할 것이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이곳에 왔었다.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설장구를 위한 길을 가야 하기에, 모든 이치들을 설장구에 접목시키려고 노력한다. 큰 스님께서 내놓은 법어나 배움의 귀결은, 마땅히 나의 설장구로 모아질 것이다. 나는 나의 설장구를 건강하고 멋지게 만들어 나갈 것을 고대한다. 시간은 사정없이 흘러서, 벌써 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샘처럼 법문이 흘러나오는 큰 스님이 계시는 이곳에서, 또 사정없이 메마른 회색도시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참으로 답답하다. 수전증걸린 환자처럼 온몸에 힘이 빠지고 경련이 일어나려고 한다. 진리를 먹다 체한 사람처럼 가슴이 아련하고, 스님들처럼 정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모든 것을 전부 버리고 공부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인생의 전쟁터로 되돌아가야 하는 마음이, 복잡하고 더티하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내려올 때는 부처님을 뒤로 하고 걷는다. 부처님의 진리의 햇살이, 우리들의 뒤에서 훤하게 비춰주고 있어 행복하다. 비록 그곳을 나와서 서울로 돌아가려고 하는 마음이 섭섭함에 목이 매이고 있으나, 큰 스님의 정진이 끝나는 날에 또 하나의 새로운 법어를 들으면서 깊은 공부를 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부디 몸과 건강챙기시길 기도하며, 행복한 진리속에서, 기쁨과 좋은 결실을 얻어내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그곳을 떠나가는 우리 모두의 걱정과 아울러 기쁨도 있다. 진정한 사랑은 진리의 사랑이다. 이제야 겨우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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