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다. 벌써 쌀쌀한 맛이 난다. 시간은 벌써 저만치 달려가고 있다. 누구랑 경주라도 하는 것인지 매일 달려간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냥 표독스럽게 앞만 보고 간다. 목적지가 어디인지 가는 곳이 어디인지 알 길이 없다. 나는 이제 영글어진 마음으로 설장구에 대해서 결론을 갖춰야 할 것 같다. 익어가는 벼이삭처럼 어느정도 황금빛으로 빛날 여력이 생겼다. 그것은 마음의 문제다. 오늘 귀한 손님이 오셨다. 내일 모래면 칠십이 되어가시는 분께서, 설장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배우려 오셨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배우고 싶었다는데, 부모님께서 반대하셨다고 한다. 이제라도 소원을 성취하고 싶어 배우겠다는 어르신의 생각에 감동을 받았다. 나이드신 분들도 배우고 싶어하는 설장구를, 젊은 사람들이 소중한 줄을 모른다. 안타깝다.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고, 아름다운 선율과 흥겨운 몸짓과 우아한 학과도 같은 날개짓으로 설장구를 가르칠 것이다. 전통의 소중함을 그분은 너무도 잘 알고 계셨다.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행복하게 잘 가르쳐드릴려고 작정했다. 잘 배워서 외국에 나가서, 전통을 세계만방에 알릴 생각이라는 알찬 계획도 세우셨다. 나이는 아무 것도 아니다. 의지가 중요하고 생각이 중요하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는데, 하루라도 빠른 것이 좋다. 그분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스쳐 지나간다. 아프지 마시고 건강하게 꼭 설장구를 배워서 소원 성취를 이루셨으면 좋겠다. 그러나 건강이 끝까지 바쳐줘야 할텐데... 그것이 걱정이다. 요번 가을은 무척이나 소중하다. 내가 그동안 학수고대하며 열중하던 것 중에 하나를, 꼭 완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새벽이다. 이 순간에도 잠이 오지 않아서 나는 그 일을 하고 있다. 평생에 가장 중요한 나의 분신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더라도 남아서, 나를 위해 사명을 다해 줄 나의 대변인이다. 그것이 끝나면 이제는 설장구를 위해서 온 힘을 쏟을 것이다. 그것은 나의 혈맥이고 심장의 박동이며 생명의 실핏줄이다. 아름다운 새벽이다. 창문 밖으로 별빛이 초롱하다. 어둠은 도시를 점령해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무의식적인 생각속에 피어오르는 그리움이 초생달처럼 나뭇가지위에 걸려있다. 가을은 덧없이 다가오고 설장구 춤은 가락을 바람에 흩날리며, 나의 마음을 멀리 보내려고 한다. 동서남북으로 갈기갈기 찢겨져 날아가는 변신의 허무앞에서... 왼종일 인생관을 바라보고 또 주저앉고 앞을 바라보고 걷고 또 의자에 앉아 뒤를 돌아보며 한탄하기도 했던, 계획에 없던 세월이었다. 이제 아무 것도 두렵지 않다. 만약에 나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려고 한다면... 그것이 좋은 일이거나 나쁜 일이거나 결코 봐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용서와 화해는 절대 웃는 모습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그냥 무관심으로 남는 것이다. 서로의 무관심으로 세상을 살아가자. 그리고 이제는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올 때면... 나는 설장구 춤을 추며 흥취의 여울목에 앉아 찬찬하게 긴 세월을 노래 하고야 말 것이다. 내가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던 제자들 ~ 그리고 또 종착역을 향해서 나를 정거장처럼 거쳐가던 제자들~ 나를 망가뜨리려고 찾아와서 훼방을 놓던 제자들~ 스쳐 지나가던 바람처럼 남은 것은 없어도, 무상이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제자들과 나누던 많은 대화들이 봄꽃처럼 화사하고 여름 소낙비처럼 개운했었다. 가을 낙엽이 되어 나를 떠나가 버릴 때~ 겨울은 온통 희고 고운 눈가루로 세상을 깨끗하게 잠재우며 고독한 한마리의 새가 되어 바람꽃처럼~ 춤을 추는 한마리의 학이 되어 빙글빙글 돌기도 했다. 나를 무의식적으로 버리고 간 제자들~ 그리고~ 나를 찾지 않고 또 찾아올 수 없는 제자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가 보고싶어 할 때도 있으나, 허공속에 메아리만 존재한다. 혹은 나를 그리워해도 올 수 없는 제자들은,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사람과 사람과의 인연이 필요에 의해서, 그렇게 헌신짝처럼 버려도 되는 것인지... 그들에게 물어야 한다는 것이 속상하다. 그러나 눈앞에 아른 거리는 슬픈 추억의 시간들이 벌써 저만치 달려가며 손짓을 한다. 물론 아름다운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리움이 허수아비의 눈물이 되어 강물처럼 흘러버린 후에야 우리의 기억이 이미 지우개로 지워져가고 있다는 사실에 직면했다. 봄 꽃처럼 화려하고 장엄하던 순간들의 미래도 오로지 계산된 미소속에서 침잠되어 코스모스도 자신이 가을의 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는 구나... 그래도 건강하게 잘 살아라`~~ 그리고 행복하여라. 세상은 변화가 심해서 지나가는 구름과 같이 허무하고, 시간은 용서없이 지나가서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아무리 젊음을 노래하며 흥겨워해도, 금방 촛물처럼 녹아버린다. 그것이 자연의 순리다. 인연은 금방 또 다른 인연을 만들고, 인연 속에서 서로 다투고 죽기살기를 해도... 모든 것이 부질없는 것들이기에, 나는 모두 옛일을 잊었다. 영원한 것이 없듯이, 나중에는 아무 흔적도 없이 존재가치마져도 사라진다. 선인들을 봐라. 세상이 모두 자기 것인양 난리법석을 쳤어도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부질없는 것들이다. 모든 것들이 먼지가 되고 한줌의 흙이 될 날이 멀지 않았으니 선을 베풀고 착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나를 미워하지 말아라~~~ 그리고 자신을 용서해라~~~ 혹시라도 섭섭한 일이 있더라도 나를 용서하고 이해해주라~~ 사람이기에 실수도 존재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더 늦기 전에 오고감을 편안하게 생각하여라~~~ 나는 항상 지치지 않고 기다리는 것에 익숙하다. 2015.9.7. 글 박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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