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통 문화를 얘기할 때 많은 이들이 떠올리는 것 중에 하나가 장구다. 특히 장구를 어께에 걸고 가락을 만들며 흥겹게 몸을 놀리는 모습은 우리 농악의 멋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이미지다.
서서 치는 장구, 바로 그 설장구의 계보를 잇고 있는 박은숙 선생을 만났다. 전통 설장구를 이어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고, 많은 것을 포기한 그에게서 명인의 정신이 전해졌다. 그의 삶은 설장구만큼이나 역동적이었다.
어렵지만 매력적인 종합예술
▲ 설장구는 몸과 마음을 힐링할 수 있는 종합예술이라고 알고있습니다. 어떤 점에서 그토록 매력적인가요
- 저는 무용도 했고, 무대 연출, 제작도 했어요. 그런데 그 공연들, 춤과 무용은 음악을 하는 분들이 해 놓은 음악에 맞춰서 만드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설장구는 스스로 음악을 만드는 거예요. 장단을 직접 치면서 그에 맞춰 춤을 추고 기교를 부리는 것이죠. 음악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음악이요, 춤을 추는 사람이 보면 춤이고, 타악을 하는 시각으로 보면 타악 기교가 돼요. 오히려 이 세 가지에서 하나만 부족해도 작품이 안 됩니다. 삼위일체로 하나가 되고, 또 동시에 장구와 하나가 되어야 인정받을 수 있죠. 그 때문에 제자들을 많이 키우지 못해 어렵기도 합니다.
▲ 그런 복합성이 예술적이면서도 동시에 후진 양성의 걸림돌이 된다는 말씀이시군요.
- 장단이 쏠리거나 밀리면 안 되고, 소리의 어울림이 한결같으면서도 고저가 있어야 하고, 또 그 안에 절도가 있어야 해요. 기본 가락만 외우고 순서만 외웠다고 되는 게 아닌 겁니다. 음악만 해도 그런데, 여기에 춤을 만들고 기교를 부려서 소리의 흐름에 완전히 스며들게 하는 것은 대단한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이지요. 처음에 호감을 갖고 본격적으로 하겠다고 도전하신 분들도 할수록 어렵다 보니 탈락하고는 합니다.
▲ 취미생활로는 배울 수 없습니까.
- 젊은이들이 전문적으로 배워서 전통의 맥이 끊이지 않게 하면 좋겠습니다만, 일반적인 취미로도 아주 좋습니다. 특히 어르신들의 경우 치매 예방이나 기억력 유지에 굉장히 좋습니다. 병원에서도 재활치료 하면서 손가락 움직이는 걸 연습하잖아요? 이 장구가 손을 계속 움직이면서 자극을 하기 때문에 음악적인 정서 자극과 행동이 동반되는 감각 자극이 동시에 되는 것이죠.
▲ 만약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한 걸음 더 나가려고 한다면 입문부터 수료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 사람마다 재능의 차이가 있고, 또 직접 하면서 발견할 수 있는 잠재력의 차이가 있겠죠. 그에 따라 각각 다르겠습니다만, 우선 가락만 다 배우고 외우려 해도 1년 정도 걸려요. 그 다음 단계까지 배우려면 한 3년은 잡아야 합니다. 그나마 다른 악기를 배우셨거나 음악적인 바탕이 있을 때 3년 정도를 생각하는 거고, 아예 음악적인 배경이 전혀 없다면 그 이상 걸린다고 봐야죠.
전통성 기반으로 현대적 극화 지향
▲ 외부 행사와 공연이 많으신데, 자체 기획 공연도 가지십니까.
- 예. 지금 준비하고 있습니다.
▲ 우리 예술이, 전통만을 너무 고집해서 재미가 없다는 의견도 일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그 문제가 아주 오랫동안 얘기가 나오고 있죠.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전통에 오리지널 자체가 없으면 아무리 현대적으로 만든다고 뿌리가 없어진 상태가 된다고 할까요? 그런 면에서 저희 선생님께서도 제가 현대무용 안무도 했었기 때문에 걱정을 하셨었어요.
지금 저는 뿌리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단 그걸 먼저 배워서 끌고 나가고, 현대화는 또 다른 방향으로. 그렇게 두 가지를 같이 추구해야 할 것 같아요.
▲ 작품을 준비하실 때 그런 생각이 반영이 되겠군요.
- 결국 많은 분들의 마음을 잡으려면 전통이 살아 있는 작품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에는 아주 흥겹게, 사람들 박수 나오게 하려고 빠르게만 몰아치고 그랬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흥'만 가지고는 사람들을 사로잡지 못해요. 여러 요소를 영화처럼 기승전결이 있게 구성해서 극화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누가 봐도 '작품'으로 인정할 수 있도록 말이죠. 그래야 설장구가 사랑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설장구 계보 잇는 수제자의 책임감
▲ 설장구를 처음 시작하신 계기가 특별히 있었는지요.
- 제가 어려서부터 무용을 했어요. 무용을 하면서 농악의 장구나 북, 소고 같은 것들을 접하게 됐죠. 그러던 중에 설장구계의 대가이신 명인 김병섭 선생님께 같은 지역 출신이라는 인연으로 어릴 때 배웠어요. 후에 김병섭 선생님께서 서울로 올라오셨고, 그 소식을 듣게 되어서 찾아가 배웠죠.
▲ 이영상 명인의 수제자로 알고 있는데요, 그분과는 어떻게 만나셨나요.
- 김병섭 선생님께 배우러 갔을 때, 거기에 이영상 선생님이 계셨어요. 당시 저는 무용단체를 하고 있어서 무용과 설장구를 병행했고, 선생님은 설장구에만 매진하셔서 김병섭 선생님의 수제자가 되셨어요. 김병선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고 이영상 선생님께서 그 계보를 이으셨죠. 그 후로 제게 한 10년 동안 꾸준히 연락을 주셨어요. "이제라도 수제자로 들어와서 이걸 이어가라"고 하셨죠.
▲ 지금은 그 이영상 명인께서는 돌아가셨고, 그 계보를 선생님께서 이으셨죠.
- 저희 선생님이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후계자에 대해 완전히 정리를 못 하시고 돌아가신 바람에, 제가 1호 수제자라는 명분을 갖고는 있습니다만 문화재 후계자로 지정은 안 된 상황이 되었죠.
하지만 선생님과 연구실에서 수천 시간을 함께 보내며 같이 호흡하고 연구해 온 제자가 저입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땀을 함께 흘린 사람만이 선생님의 설장구를 이어갈 수 있지 않겠어요?
▲ 잠깐 만나시고도 제자를 자임하시는 분들이 계신가 보군요.
= 예, 몇몇 계시더라고요. 서로 자신이 최고라고 주장해서 두서가 없습니다. 제가 이걸 놓지 못하고 끝가지 붙잡고 있는 이유 중 큰 부분이에요. 제가 놓아버리면 질서 없이 혼란스러울 것 같더라고요. 어렵더라도 체계를 잡고 맥을 이어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끝까지 하고 있는 겁니다.
▲ 이영상 명인께서 생전에 전혀 공식화를 하지 않으셨던 건가요?
- 선생님께서 갑자기 몸이 아파서 수술을 하시면서… 나이가 많으시니까 걱정이 되셨나봐죠. 제가 병원에 갔을 때 1호 이수자라고 이수증을 주셨어요. 다행히 그 수술이 잘 끝나고 회복하셔서 돌아오셨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이미 수제자를 줬다고 알려지고 하니까 사람들이 안 모이고, 경제적으로도 힘든 상황이 됐죠. 그래서 공식 발표를 좀 미루고 사람들을 좀 모았다가 나중에 발표를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언론이나 공식적인 자리를 통한 발표는 없었지만 이미 이수증을 선생님으로부터 직접 받았고, 그 자리에 사모님도 계셨어요. 사실 저를 밀어내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 같다고 느끼고 있고, 여러모로 어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수제자로서 책임을 다 하라고 하신 선생님 말씀 때문에 제가 끝까지 계속 하려고 합니다.
▲ 끝으로 설장구 발전을 위해서 우리 사회에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 외국의 자료들을 봐도 설장구처럼 직접 음악과 춤을 온전히 홀로 하는 문화는 없는 것 같아요. 특이성이 있는 문화인만큼 이것을 국가에서 승무나 살풀이처럼 하나의 장르로 떼어서 문화재로 인정해 주면 좋겠습니다. 설장구는 농악에 속하지 않아도 그 자체만으로도 예술성이 있고, 작품이 되니까요.